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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Sep 21. 2022

새로운 소설가의 발견

이주혜 장편소설 『자두』

독하다 토요일에서 읽을 책으로 이주혜의 단편집 『그 고양이의 이름은 길다』를 선택한 것은 완전 우연이었다. 성북동에 있는 고양이 서점 '책보냥' 김대영 작가가 제목에 고양이가 들어 있다고 가져다 놓은  내가 우연히 들춰보다가 문장이 좋네, 하고  와서 읽기 시작했던 것이다. 표제작도 좋았고 데뷔작인 「오늘의  일」도 독특한 아우라가 있었다. 이주혜의 소설은 인생의 쓴맛들이 배어 있어서 좋았고 어떤 식으로든 섹스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특히  「오늘의  일」에서 셋째 딸이 원나잇 스탠드를 하는 장면은 황홀하고 아련했다.  


소설을 거의  읽어갈 때쯤 독서노트를 펴고 어떤  좋았나 체크를 해보다가 모든 단편 제목에 표시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번역가로 활동하던 사람이 뒤늦게 소설을 펴낸 경우였다. 6 만에 출간한 훌륭한 단편집 이전에 장편소설을 먼저 썼다는 것을 알고 아리랑도서관에 가서 이주혜의   『자두』를 빌렸다. 번역가인 주인공이 에이드리언 리치의 산문집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의 후기를 쓰려는 상황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은아는 어질고 순한 시아버지를 닮은 애인 세진과 결혼하지만 행복은 계속되지 못한다. 결혼 9 만에 시아버지가 암으로 입원을 하게 되고 며느리와 아들은 병구완에 지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은아는 병원에서 시아버지를 돌보며 번역 일을 병행하지만 텍스트에 집중할  없어 괴로워한다. 결국은 간병인을 들이는데 일당 8 원짜리 간병인 황영옥은 노련하긴 하지만 쉽게 가까워지진 않는 타입이다. 게다가 노인에게 ‘죽어요라고 악담을 했다는 목격자까지 생긴다.


이 소설은 어린 시절 기순네 자두를 몰래 따먹던 청년이 그 집 딸인 첫사랑 순이를 데리고 서울에 와서 세진 등을 낳아 기르며 살던 이야기의 후반부에 해당한다. 거기에 시름시름 앓다가 더운 여름에 세상을 떠난 황영옥 어머니의 이야기가 겹친다(그래서 황영옥은 노인에게 “염천 말고 기왕이면 좋은 날에 죽어요.”라고 말했던 것이다). 시아버지가 죽고 일 년 후 두 사람은 이혼한다. 병원에서 처음 보는 육촌형이 시아버지를 모시지 않았다고 은아를 비난하자 세진이 울면서 죄송하다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아이가 없는 것, 시아버지의 의견을 존중한 것 등이 이해될 만한 일이라 생각했던 자신이 순진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남편이 착하고 시아버지가 어질어도 여기는 완고한 가부장제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마지막에 일본 북해도로 여행을 떠난 은아가 황영옥에게 엽서를 쓰는 장면이 평온해서 다행이었다. 짧은 소설이니 한 번 읽어보시기 바란다. 이주혜라는 멋진 소설가를 발견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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