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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Sep 19. 2022

뱃고동낚지쭈꾸미와 맥주, 떡볶이가 함께 한 일요일

희석식 소주를 멀리 하기로 했습니다

되도록 희석식 소주를 마시지 않기로 했다. 어제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이 끝나고 배가 고파진 아내와 나는 성북천에 있는 단골집 '뱃고동낙지쭈꾸미'로 가서 주꾸미 볶음 이인분을 시키고 냉장고에 가서 카스 맥주 한 병을 꺼내왔다. 일요일 강연을 끝내고 나면 두 사람 다 힘이 쪽 빠져서 도저히 집에서 밥을 차려 먹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식당에 가서 반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게 되는데 휴일엔 문을 닫은 가게가 많으니 뱃고동에 자주 가게 되는 것이다. 간장에 조린 계란과 계란탕 국물 등 밑반찬이 맛있고 여자 사장님이 쿨한 것도 한몫한다. 오후 5시쯤의 가게는 우리 말고 남자 손님 셋이 있는 테이블뿐이라 한산했다. 그러나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들의 목소리가 의외로 컸고 한 사람은 태블릿으로 수원삼성과 전북현대의 축구 경기를 틀어 놓은 상태였다. 가게에 있는 TV에서 똑같은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그랬다.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에어컨을 설치하는 사람들 같았는데 거래처 대하는 얘기나 하루 일당 얘기를 하면서 전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공통점이 있었다. 후배가 계속 자기 얘기만 하자 선배가 "야, 너는 그 축구 좀 꺼. 이어폰을 끼든지."라며 화를 냈다. 나는 "되게 시끄럽네"라고 입모양만으로 말하며 아내에게 맥주를 한 잔 더 따라주었다.


스무 살 무렵부터 마셔온 진로 소주병을 세어 보면 지구를 몇 바퀴 돌 정도는 아니더라도 큰 창고 몇 개는 채울 것 같은데 왜 갑자기 마시지 않겠다고 하느냐 묻는 분들에겐 '좀 더 마시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겠다. 이제 아내나 나나 나이가 들어간다.  전처럼 객기로 폭음을 하기도 어렵고 '부부가 둘 다 놀고 있다'고는 하지만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술은 여전히 좋아한다. 그러니 양이나 횟수를 조금 줄여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내는 내가 따라준 맥주를 반 컵쯤 마시고는 "정말 시원하다."라며 감탄했다. 평소 맥주를 좋아하지 않아서 나를 처음 만난 날도 혼자 바에서 앱솔루트 보드카를 마시고 앉아 있던 아내다. 그런데 이젠 둘이 앉아 낙지볶음 안주에 맥주를 마신다. 두 병째 맥주를 꺼내왔다. 그러나 이미 쭈꾸미에 배가 불러서 술이 잘 들어가지 않는다. 소주였으면 아직도 빠른 속도로 잔을 비우고 있었을 우리는 서로를 대견해하며  웃었다. 술을 많이 마시는 이유 중에는 '배가 고파서'도 있음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배가 부르지만 볶음밥을 포기할 순 없었다. 우리가 밥 볶아 주세요,라고 말하자 사장님이 공깃밥 하나? 하고 물었다. 쭈꾸미와 밥과 맥주로 가득 찬 배를 안고 집으로 왔다.


나는 월요일에 리뷰  책쓰기 워크숍 원고들을 꼼꼼히 읽었고 아내는 청주오창도서관에서 진행했던 '손바닥 자서전' 단행본 원고 교정을 봤다. 책보냥의 사장님 김대영 작가가 만들어준 표지가 아주 이쁘게 나왔다. 소주를 마셨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저녁 일곱 시부터 열한  반까지 꼼짝 않고 일을 하다 보니 다시 배가 고파졌다. 아내가 냉장고에 떡볶이 양념이 남았다며 냄비를 꺼냈다. 일요일 야밤에 난데없는 떡볶이 파티가 시작되었다. 술은 마시다 남은 와인  컵씩이었다.  배가 불렀다. 우리는 밖으로 나가 쌍다리기사식당 근처까지 산책을 했다. 웬일로 일요일엔 문을 닫는 식당 '덴뿌라' 영업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졸음이 오길래 집으로 돌아와 양치를 하고 잤다. 생각해 보면 우리 부부는 배가 고프거나 부르거나   가지 상태인  같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해서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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