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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Oct 13. 2022

북토크에서 만난 뚜라미 선배

코끼리서점 북토크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그제 낮 두 시에 분당에 있는 코끼리서점에 가서 북토크를 잠깐 했습니다. 이번 북토크는 아내와 저의 오랜 친구인 김서령 작가가 연결해 준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아침과 저녁에 각각 역삼동과 안국동에서 새 글쓰기 강연을 시작하는 날이라 좀 무리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날 하지 않으면 11월 말에나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그냥 감행하기로 했습니다. 빨리 독자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서였겠죠. 서점에 들어서니 길고 좁은 홀 안 테이블엔 제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와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그리고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습니다. 문선미 대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벌써 북토크 참가자들이 오셔서 제 책을 뒤적이고 있었습니다.

저는  20여 년간 광고회사를 다니며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다 퇴직하고 글을 쓰게 된 얘기를 했습니다. 제주에 가서 책의 원고를 쓰던 얘기와 '부부가 놀고 있다'는 좀 이상한 제목을 정하게 되었던 이야기, 쓸데없는 일을 할 때가 제일 즐겁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실수담이 워낙 많아서 그 이야기만으로도 한 챕터를 채우게 되더라는 얘기를 했더니 모인 분들이 약간 안쓰러운 눈으로 저를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실수담을 목격하는 일이 바로 뒤에 일어났습니다. 50분의 강연 뒤 잠깐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문이 열려 있는 줄 알고 출입문 유리에 얼굴을 박은 것이었습니다. 무척 아프기도 했지만 더 문제는 그 바람에 왼쪽 안경다리가 옆으로 크게 벌어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초점이 맞지 않는 상태로 어설프게 안경을 코에 얹고 나머지 강연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샌다는 속담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창문을 쳐다보니 아는 선배가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안경 때문에 헛것이 보이나 했더니 아니었습니다. 대학 때 함께 노래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뚜라미 전수영 형이 틀림없었습니다. 수영이 형은 이 동네에 살았고 우연히 제가 북토크 한다는 포스터를 상가에서 보고는 일부러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무사히 북토크를 마치고 형과 다시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수영이 형은  상가 건너편 아파트에 살고 있고 이곳은 거의 매일 오는 곳이라며 위층에 있는 안경점에 가서 안경다리를 고치자고 했습니다. 4층으로 올라가나 코끼리안경이 있더군요.  코끼리서점인가 했더니  건물 이름이 '코끼리상가'였던 것입니다. 코끼리안경 사장님은 부러진 제비 다리 고치듯 정성스럽고도 능숙하게 안경다리를 손보아주셨습니다. 네이버에서 '안경 픽싱의 달인'으로 뽑혔을 정도라고 하니 실력이야 최고였죠. 사장님은 다리만 고쳐   아니라 콧잔등 위에 얹는 받침대  개도 새로 갈아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너무 고맙다고 하며 돈을 내겠다고 했더니 '동네 사는 선배가 이미 돈을 많이 썼으니  공짜로 해주겠다' 웃었습니다. 수영이 형도 "아니, 이거 나한테는 돈을  받고  사람에겐 이러기예요?"라며 화를 내는 척했습니다. 수영이 형이 저를 작가라고 소개하는 바람에 저도 “고마운 김에 오늘 안경점을 포스팅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사장님은 “저기 보면 백년 가게에 뽑힌 포스터 보이시죠? 우리 집은 지역화폐도  통용됩니다.”라고 PR 열심히 하셨습니다. 안경을  고치고 나와 수영이 형이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줘서 실수  하고 서촌까지 가는 버스에 몸을 실을  있었습니다.  남의 신세를 지고 사는 신세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아무튼 저는  인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낯선 곳에서도 선배가  하고 나타나 도와줄 정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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