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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Oct 18. 2022

영화 얘기만 하진 않습니다

듀나의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야 알았다니』

'옛날 영화'라고 하면 영화학도들이나 솔깃할  내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책을 들춰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나는 '타란티노는 DJ 같은 사람이다'라는 대목에서 이 책의 진가를 알아챘다. 비디오 가게 점원으로 시작한 이 천재 감독의 다양한 영화 데이터 베이스가 일련의 수작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마치 어제 얘기하던 얘기를 이어서 하는 것 같은 듀나의 특유의 잘난 척을 견딜 수만 있다면 이 책은 꽤 재밌는 텍스트다.  특히 1960~70년대 만들어진 TV 드라마가 80년대 이후 만들어진 드라마보다 화질이 더 좋다는 걸 알게 된 건 진짜 흥미롭다. 당시엔 흑백 시절이었지만 모두 영화 필름으로 찍었는데 VHS 테이프로 편집을 하던 시대엔 어차피 구리고 배불뚝이 브라운관에 틀 드라마였으므로 더 조악한 화질도 괜찮았던 것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지금 TV에 틀어보니 60~70년대 드라마들의 화질이 장난 아니게 훌륭하더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마이클 잭슨, 마돈나, ,   오츠  80년대는 뭐든 화려하고 하고 유치했던 시대다. 책엔 《국가의 탄생》이나 《시민 케인》 같은 기념비작들이 나오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소하고 후진 영화들도 많이 등장한다. 명작으로만 이루어진 영화의 역사는 재미없다는 것이다.  기술이나 문명이 항상 앞으로만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도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를 예로 들며 설명하고 있다. 옛날 영화를 살펴보면서 창작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   있다는  책이 가진 매력이다.

이밖에도 우리나라 젊은 감독들이 왜 임권택 대신 마틴 스콜세지나 오즈 야스지로 감독 같은 사람을 영화적 아버지로 삼게 되었는가를 말하는 대목도 설득력 있다(물론 김기영 감독 같은 예외도 있지만). 어느 시대든 영화는 그때 주류의 생각들을 담고 있다. 듀나는 히치콕이 없는 영화사를 상상해 보면서 그가 이룬 업적이 한 사람의 천재성을 기반으로 태어난 게 아님을 유추하기도 한다(더구나 그는 당시 주류였던 백인 남성으로 태어나는 행운을 누렸다). 버스 안에서 한참 재밌게 읽다가 반납 독촉 메시지가 떠서 전철역에 있는 성북도서관 반납 부스에 넣고 왔다. 다시 빌리면 더 꼼꼼하게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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