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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Oct 26. 2022

제대로 알면 선도 악도 아니라 말하는 책

『거의 모든 물질의 화학』

군대에서 읽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여주인공의 남편이자 의사인 후베날 박사가 왕진을  환자에게 "엄밀한 의미에서 모든 약은 독약이에요."라고 말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며칠  똑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의 책을 읽었다. 『거의 모든 물질의 화학』의 저자 김병민은 '독과 약은 본질적으로  몸이다'라고 말한다. 독성물질도 소량으로 쓰면 약이   있지만 유용한 물질도 다량이 몸에 들어오면 독이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걸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다. 예를 들어 밀가루의 글루텐은 사악한 물질이므로 '글루텐 프리' 지키기만 하면 우리는 건강해지는가? 에이, 세상이 그렇게 간단할 리가 있나.

이 책의 핵심은 이것이다. 세상엔 완벽한 천사도 악마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화학물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대 문명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물질이 화학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화학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렵다'와 '위험하다'부터 연상한다. 이것은 20세기 초 플라스틱이 등장하며 80억 톤이 넘는 고분자 물질이 지구를 채우면서 시작된 얘기다. 그전까지 인류는 자연에만 의지하는 '결핍의 시대를 살았지만 현대 인류는 화학 덕분에 물질 과잉의 시대를 살게 되었다. 그런데 어쩌면 고마운 존재일 수도 있는 이 화학은 마치 빛과 소금처럼 평소에는 그 존재가 인식되지 못한 채 쉽고 편리하게 사용되다가 가끔 터져 나오는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악역 취급을 받는다.


우리는 모르는 게 있으면 인터넷을 찾아보고 그중 맨 앞줄에 있는 몇 가지 정보만으로 검색을 그친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송매체에 나오는 건 뭐든 손쉽게 믿는다. 방송에 나올 정도라면 근거도 확실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괴담이나 거짓정보를 믿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유튜브 검색을 숨 쉬듯 하는 우리에게 화학은 괴담이나 거짓정보가 퍼지기 쉬운 분야다. 김병민은 화학물질이 의혹과 공포의 대상이 아닌 친근한 물질이 되고 그 본질을 이해함으로써 물질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것은 코로나 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피어난 생각일 것이다. 김병민은 화학공학을 전공한 과학자이자 교수지만 철학, SF, 시, 에세이, 만화까지 즐겨 읽는 다독형 인간이다. 그런 그이기에 성장이나 효율이라는 단어 앞에서 무시될 수 있는 용감한 질문들을 하면서도 T.S 엘리엇이나 레이첼 카슨을 자유자재로 인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지킨다고 믿었던 도덕적·윤리적 규칙은 다국적 기업이나 독재자들에 의해 쉽게 깨진다는 게 증명되었고, 나아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이 시대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화학 물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 이런 변화를 받아들일 근력을 길러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변할 수 있는가? 그는 이렇게 나빠진 상황 앞에서도 '분리수거를 잘하고 자동차를 덜 타거나 전기를 아끼면' 해결될 것처럼 거짓 계몽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소비자가 하는 이런 미미한 실천보다는 기업이나 정부가 나서는 게 훨씬 더 영향력과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현명한 선동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거대 기업을 상대로 변화를 이끌어 냈던 '에린 브로코비치'의 또 다른 시작일지도 모른다. 이는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을 한 번 더 읽으면 확신하게 된다. 이 책은 소비자를 현명하게 선동한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선한 연대의식으로.


그런데도 일반 소비자가 화학물질의 본질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철저하게 자본의 잉여로 작동하는 기업과 정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소비자이고 국민이기 때문이다. 물질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그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고 물질 세상을 바꿀  있는 근력이 생긴다.  책을  시대의 물질 소비자로 불리는 모든 독자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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