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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Oct 27. 2022

우리는 왜 연극을 보는 걸까?

극장 안에서 매번 작은 기적이 일어난다

지난 일요일 저녁, 대학로에 있는 선돌극장에서 《한남의 광시곡(K-Men’s Rhapsody)》을 두 번째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왜 연극을 보는 걸까. 인터넷만 열면 동영상이 쏟아지고 한 달에 만 원 정도면 전 세계인이 함께 보는 OTT 서비스를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데 왜 굳이 조기 매진을 신경 쓰며 예매를 하고 극장까지 와 줄을 서서 입장을 하는 걸까.


《한남의 광시곡》은 명백한 페미니즘 연극이었다. 1920년대 나혜석의 이혼 스캔들과  입센의 《인형의 집》이 겹치고 《신여성》이라는 잡지가 '모단 '들을 취재하는 과정이 나오는가 하면  2016 강남역 사건, 2022 신당역 사건  여성 혐오로 인해 발생한 비극적 살인 범죄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에 독립운동에 가담을 했던 기생 이야기, 체공녀 강주룡 사건, 이승만, 일베,  신민당사로 찾아간 YH무역 여공들, 운동권 학생들의 남녀차별 문제까지 시대별로 거론할 만한 다채로운 사건들이 등장한. 한예종 연극원 연출과 교수이기도   김재엽 작가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50세가 넘어 페미니즘 이야기를 꺼내니 친한 사람들조차 곤혹스러워하는  보이더라'라며 웃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메시지 전달에만 치중했다면 연극은 매우 따분하고 교조적이었을 것이다.


나와 아내는 김세환 배우의 팬이라 이 연극을 접하게 되었는데 김세환은 물론  이다혜, 서정식, 이소영, 정유미, 백운철 등 출연하는 배우 모두 스토리를 진심으로 대하는 게 느껴졌다. 특히 첫 번째 관극이 끝나고 우리 부부가 "극 중의 코믹한 부분을 좀 더 살려 달라. 웃길 땐 배우들이 마음 놓고 웃길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한 부탁을 잊지 않고 반영한 일요일의 막공은  정말 만족도가 높았다.


연극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리 액션이 크고 과장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똑같은 극본이라도 그날의 분위기와 컨디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애드립도 가능해진다. 이 연극을 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아, 연극은 정말로 관객의 상상력을 최고로 활용하는 분야구나. 배우가 '여기는 1920년대 신여성 편집실'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그 사무실에 가서 앉아 있다. 최소한의 무대 장치와 대사만으로도 관객과 배우는 시간과 장소를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고 무한대로 확장할 수도 있다. 이건 극장 안에서만 일어나는 실시간의 기적이다. 우리는 이 작은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서 연극을 본다. 넷플릭스나 웨이브에서는 볼 수 없는 소박하지만 위대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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