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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02. 2022

'내가 좋아하는 글은 이런 거'라며 아내가 건네준 책

김지승의 『짐승일기』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을 가지런히 정리한 문장들을 따라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문장이 가진  외에 저자의 마음씀이나 됨됨이까지 느껴져 살짝 놀라거나 기분이 좋아지는 글을 쓰는 능력 아닐까. 그런 면에서 자신의 일기를 요일별로 묶은 김지승의 『짐승일기』는   글들이 가지런히 모여 있는 책이라   있다. 그저께 내가 대학로 동양서림에 주문해 놓은 책들을 찾으러 갔을  함께 갔던 아내가 매대 위에서 고른 책이다. 살짝 페이지를 들춰  아내는 "내가 좋아하는 글은 이런 "라며 감탄했다. 단정하고 꾸밈이 없으면서도 실체와 관념을  섞어내는 김지승 문장의 슴슴한 매력에 빠진 것이다.


김지승은 '나에 대해 얘기할수록 진실에서 멀어지는데 어쩌자고 덜컥 일기를 쓰기로 약속한 것일까'라는 탄식으로 책을 시작하지만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축복이다. 일기예보에서 비가 온다고 했는데 오지 않은 날 하늘을 쳐다보며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은 게 또 뭐가 있는지 오래 생각한다'라고 쓴 문장은 앞 뒤로 몇 줄만 더 붙이면 그대로 시가 될 태세다. 그렇다고 독백만 이어지는 건 아니다. 회의실에서 만난 남자의 "왜 그렇게 열심히 웃어요?"라고 말 한마디에 웃음은 감정 표현일 뿐 아니라 어색함과 불편함의 방어적 반응임을 깨닫거나 '단짝'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 있는 '늘 함께'라는 말이 간단히 사람을 질식시킬 수도 있는 말이지 않냐는 인식은 이름과 달리 작가가 섬세한 여성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우는 법을 잊은 짐승이 인간이 된다. 인간이 되고 만다."

책의 띠지에 쓰여 있는 문장이다. 왜 짐승일기라는 제목을 붙였는지 짐작이 가면서 앞으로 펼쳐질 내용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탁월한 서술이다. 몇 페이지 읽지 않았는데 쏟아지는 쓰시마 유코, 엘런 식수, 주디스 버틀러, 맥밀런 코텀 등 낯선 작가들의 이름은 내 세계의 비좁음과 편협함을 반성하게 되고 '혼자 있을 때 손에 집중한다'면서 자살 충동까지 거침없이 언급하는 저자의 대담함이 마음에 든다. 계속 읽어야겠다.


어제 참여연대 글쓰기 수업에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생각 말고 읽으면서 독중감을 쓰라'라고 말했는데 그걸 실천하는 의미에서라도 지금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아침에 짐승일기의 독중감을 쓴다. , 동양서림에서 같이 가져온 스티븐 킹의 소설과 류근의 산문집도 읽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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