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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05. 2022

형제복지원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 연극

이수인의 《해피 투게더》

성북동에서 개업을 앞두고 있는 양익준 감독의 카페 '빠뿅'에 가서 양 감독의 동업자이자 동생인 경희 씨와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양 감독이 오더니 손님 테이블에서 양 감독을 기다리고 있던 여자분을 소개해 주었다. 소규모아카시아밴드의 보컬인 싱어송라이터 송은지 씨였다. 예전부터 멋진 분이라 생각한 사람을 우연히 만나다니 행운이었다. 반갑게 얘기를 나누던 아내와 나는 그녀의 제의로 졸지에 연극 《해피 투게더》를 보러 연우소극장으로 가게 되었다. 둘 다 집에서 신는 슬리퍼를 신고 나왔으나 연극이 보고 싶어 개의치 않고 그냥 갔다. 당연히 예매도 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이 연극에 참여하기도 했던 송은지 씨 덕분에 현장에서 티켓을 살 수 있었다.  


연극은 부산 형제복지원 이야기였는데 이수인 연출가가 극본과 연출을 겸한 작품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형제복지원'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예전에 MBC에서 창사특집으로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드라마를 방송했는데 아주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당시 최고 연기자 군에 속했던 김무생과 전운이 출연했고 연출은(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대장금》을 만든 사극의 대가 이병훈 PD였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것이다. 부랑아들을 돕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박인근은 알고 보면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때리고 심지어 수백 명을 때려죽이기까지 한 시대의 악마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1975년부터 1987년까지

국민이 낸 세금으로 형제복지원을 운영하며 천사로 행세하며 살았던 것이다. 나중에 검찰은 15년의 중형을 구형했지만 그는 결국 2년 조금 넘는 형을 살고 나와 평화롭게 숨질 때까지 부귀영화를 누렸다.

술을 마시고 길에서 잠들었다가 끌려온 사람이 있었다. 아빠가 돈 벌러 간다며 고아원에 맡겼는데 끌려 온 꼬마도 있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잠깐 술에 취했다가 누가 신고해서 억울하게 끌려 온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복지원에 도착하자마자 무지막지하게 맞았다. 몽둥이찜질을 이겨낼 사람은 없었다. 경찰에게 잡히고 나서 얼마 후 자동차가 와서 끌고 갔으므로 경찰이 그들과 한패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1975년 유신정권 때 발효되었던 '내무부 훈령 410호'를 목이 터져라 반복해서 외치던 배우가 너무나 안쓰러웠다. "행군 중에 군가 한다, 군가는......" 이라며 찬송가를 군가처럼 외쳐 부르는 다섯 배우들이 너무나 처연했다. 코러스로 나와 시의적절하게 노래하고 추임새 넣던 두 여성 배우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다만 박인근 원장 역을 맡은 배우의 카리스마가 약해서 안타까웠고 마지막에 박인근의 부인이 등장하는 장면도 다소 뜬금없어 보였다. 연극의 대사는 반복의 묘를 잘 살려 주제 의식을 전달하고 있었다.

같이 연극을 보고 나온 양익준 감독이 이런 연극을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이 봤으면 좋겠다며 배우들이 참 대단하다고 하자 송은지 씨가 '이 힘든 연극을 하루 두 번 상연한 적도 있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에너지 소비가 많은 작품을 하루 두 번 하다니, 쓰러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연극에 대한 그들의 애정과 사명이 느껴져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졌다.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내일인 11 6일까지 공연한다.  그렇지만 너무 늦게 리뷰를 읽었다고 아쉬워하지 말고 제목을  기억했다가 다음에라도 보시기 바란다. 연극은 '이거 봐야지' 하면 끝나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을 위해 언젠가 다시 상연하는 장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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