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Nov 06. 2022

교회 부흥회 같았던 북토크

임지영 작가의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

임지영 작가의 책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 출간기념회에 다녀왔다. 임지영 작가와 나는 서로 팬이라 주장하는 사이인데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같은 출판사에서 책을 냈고 청주라는 같은 도시에서 글쓰기와 인문학 강연을 번갈아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한 번 스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얼마 전에 리뷰를 쓰기도 했던 『그림과 글이 만나는 예술수업』을 가지고 인사동 코트에서 출판기념회를 한다지 않는가. 더구나 사회자가 윤영미 아나운서라지 않은가. 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내와 함께 가고 싶었지만 토요일인 어제는 집으로 동네 손님들을 초대해 놓은 상황이라 아내는 음식 준비와 청소에 바빠 나 혼자 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우리 집은 사흘 간의 한옥 지붕 수리가 끝난 참이라 토요일은 오전 내내 먼지투성이인 집안과 마당을 쓸고 닦아내야 했다. 나는 청소를 마치고 잠깐 우리 동네 공방에 와 계시다는 심혜경 작가를 만나 잠깐 수다를 떨다가 황급히 인사동 가는 버스를 탔다.


세상 바쁘게 사는 윤영미 아나운서가 오셨길래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임지영 작가와 아주 친한 사이라는 건 처음 알았다. 한 십 년 전부터 친하게 된 두 사람은 단 둘이 여행을 자주 떠난다고 한다. 가서는 남편이나 집안 얘기 '이딴 거'는 하나도 안 하고 오로지 "넌 꿈이 뭐니." "언니는 앞으로 뭐 하고 싶은데?" 같은 청소년 토크를 하며 새벽  세 시까지 와인잔을 기울인다고 한다.

임지영 작가는 "넌 잘 될 수밖에 없을 거야!"라는 윤영미 아나운서의 말이 얼마나 용기를 주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정말 중요함을 역설했다. 윤영미 아나운서가 그 말을 듣고 "말을 해야 이루어진다"라면서 임지영의 예술수업에 대한 보다 큰 청사진을 언급했고 모인 사람들은 모두 박수로 환영했다.

한 번은 음식과 옷을 잔뜩 챙겨 넣은 트렁크를 실수로 집에 두고 가는 바람에 두 사람이 여행지에서 빈털터리가 된 적도 있다고 한다. 임지영 작가의 말로는 '칫솔 하나 없는' 완벽한 무의 상태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없으면 없는 대로 다 살아지더란다. 사람 사는 데 그렇게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는 윤영미 아나운서의 말에 무릎을 쳤다. 생활 속에서 통찰력을 키우는 사람이었다.


둥근 테이블 앞에 앉았는데  옆의  자리에 있는 분이 최병일 선생 같았다. 여쭤보니 맞았다. 최병일 선생은 '독서토론 지도자 양성 수업'에서 선생님과 제자로 만났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수업을 누구보다 잘하시는 분이고 얼마 전엔 아들, , 며느리 등과 진행하는 가족 북클럽 얘기를  『한 지붕 북클럽』이라는 책을 며느리와 함께 내기도 했다. 많은 분들을 만났다. 소금책에도 왔던 TBWA/Korea 카피라이터 안순학 씨는 임지영 작가와 친한 선후배 사이라며 인사를 했다.  책의 리뷰를 기가 막히게 써주신 '즐거운예감' 신기수 대표와 인사를 나눴고 당산동에서 김탁환 작가의 강연을 같이 듣던 이상미 선생을  알아봐 미안해하며 거듭 인사를 했다(안면인식장애는 아닌데 유난히 실생활에서 만난 사람 얼굴을  기억  한다. 큰일이다). 연극배우이자 화가인 김자숙 선생을 만났다. 김자숙 선생은 북토크 말미에 무대로 나가서 기생 금홍이와 화가 나혜석을 불러내는 모노드라마를 선보이기도 했다. 뒤늦게 오신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님께 인사를 드렸고 임프린트인 학교도서관저널의 여문주 주간과도 반갑게 인사를 했다. 여문주 주간이  책과 글의 왕팬이라는 박혜리 에디터를 소개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번이나 했다.  옆에 안장 있던 '부엉이들' CBO 송은아 선생이 "아는  같다"라고 말을 걸어와 서로 명함으로 교환했다.


임지영 작가는 학인들에게 그림을 한 장 보게 하고는 '15분 글쓰기'를 하게 함으로써 예술이 어떻게 한 사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예술 교육가인데 그의 수업을 받은 분들이 많이 와서 출판기념회 분위기는 완전 교회 부흥회를 방불케 했다. 북토크 중간중간 그의 수업을 듣고 인생이 달라졌다는 간증을 하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이런 교육은 국가적 차원에서 장려해야 한다는 얘기가 5분마다 한 번씩 나왔다. 윤영미 아나운서도 "국민청원을 합시다"라며 분위기를 돋웠다.


북토크 말미에 여러 명망 있는 인사들이 나와서 북토크와 책에 대한 소감을 말했는데, 끝날 때쯤 윤영미 아나운서가 '자신이 아는 사람 중 짧은 글을 가장 재밌게 쓰는 사람'이라면서 나를 지목하는 바람에 앞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온라인으로 시작된 인연은 온라인으로 그치는 게 아니고 반드시 오프라인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임지영 작가를 통해서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요즘 진행하고 있는 글쓰기 수업과 임지영 작가의 15분 글쓰기는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그림을 보고 15분 만에 쓴 자신의 글에 눈물이 터지는 사람이 많은 걸까. 그건 자신도 몰랐던 예술에 대한 그동안의 두려움과 욕구와 반성과 깨달음과 통찰이 장마철 둑처럼 터졌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임지영 작가를 존경스러운 사람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에 나오는 "지금부터 백 년 후에 말일세. 사람들이 자네나 나를 조금이라도 기억해 준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찰스 스트릭랜드와 알고 지낸 덕분일걸세."라는 대사를 인용하며 "임지영도 그렇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내가 말을 마치자 사람들의 동의하는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북토크가 끝나고 김자숙 선생이 선물로 가져온 그림을 상으로 받느라 한 번 더 앞으로 나가야 했다. 김자숙 선생이 오늘 오신 분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얘기를 한 사람에게 주라고 했는데 임지영 작가와 윤영미 아나운서가 나를 꼽았기 때문이었다. 부끄럽고도 기뻐서 나는 잠깐 얼이 나갔다. 모인 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집에서 혼자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아내를 떠올리며 급하게 북토크 자리를 빠져나왔다. 다행히 집으로 가는 버스가 금방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