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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11. 2022

선관위에서 6시간 강연했습니다

홍보업무 공무원 글쓰기 강연

코바코(KOBACO)에서 기획한 《2022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홍보역량 강화교육》의 일환으로 홍보 주무관들에게 글쓰기 강연을 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강연 시간이 무려 여섯 시간이었습니다.

가는 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리므로 새벽 6시에 일어나 전철을 타고 수원으로 갔습니다. 화서역에 내려 이십여 분을 가야 선관위 건물이 나오는데 지도서비스로는 도보길을 알아보기가 힘들더군요. 할 수 없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선관위가 어딘지 아시냐고 여섯 명에게 물어봤는데 초행길이라는 분이 둘, 모른다는 분이 넷이었습니다. 결국 담당자와 통화를 해서 헤매다 다른 직원의 도움으로 겨우 찾아갔습니다. 선관위는 숲을 지나 호숫가 깊숙이 숨어 있었습니다. 시간 여유를 두고 갔지만 결국 9시 1분 전에 도착했고 저는 화장실에 갔다 오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과정에서 강의실을 못 찾아 또 헤매는 추태를 보이고 말았습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은 물론 멀리 거제나 제주도에서 오신 분도 있었습니다. 다들 주무관이었고 대부분 홍보 글쓰기를 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공무원들이라 많이 웃지는 않았습니다. 글쓰기 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보고서나 기획서, 보도자료 쓰는 법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백승권 대표의 『보고서의 법칙』에 나오는 대로 두괄식으로 쓰고 의사결정권자의 동의를 끌어낼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업무 글만 쓰면 글이 늘지 않으니 다른 책도 읽고 다른 글도 써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도 표정에 별 변화가 별로 없길래 ‘제 강의가 괜찮으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더니 대단히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좋다면 얼굴로도 좀 나타내 달라고 화를 내자 비로소 몇 분이 웃었습니다.


식당에서 점심으로 비빔밥과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저는 미역국을 더 달라해서 두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전날 서울역에서 위스키를 한 병 사 가지고 가서 늦게 들어온 아내와 마셨더니 숙취가 약간 남아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UX라이팅에 대해 소개하고 사과문 쓰는 법에 대해 강연했습니다. 정재승 박사와 김호 대표가 쓴 『쿨하게 사과하라』에 나온 내용을 중심으로 얘기했습니다. 실습으로 용산구청장의 사과 연설문 초안을 써보라 했습니다. 15분 간의 글쓰기로 지금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의 사과문보다 훨씬 좋은 글들이 나왔습니다. 주무관들은 자신의 글을 직접 낭독하거나 남이 읽어주는 경험을 하는 게 신선하다며 좋아했습니다. 오전에도 오후에도 실습한 글을 반은 본인이 읽고 반은 제가 읽도록 정했거든요.


마지막으로 SNS에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매일 글을 찾아내 쓰지 못하는 사람은 업무 글도 잘 못 쓰는 법이라고 위협하며 글쓰기를 생활화하라고 했습니다. 홍보 공무원으로만 남지 말고 부캐를 만들거나 ‘글 쓰는 공무원‘이 되라고 했습니다. 3시 55분쯤 강연을 끝내고 질문이나 느낀 점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했더니 아무도 얘기를 안 했습니다. 그래도 느낀 점이 있을 텐데, 하고 버텼더니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선량한 주무관 한 분이 ’너무 좋은 강연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옹졸한 저는 비로소 미소를 짓고 수고하셨다고 인사를 했습니다. 여섯 시간 동안 떠들었더니 목이 아프고 다리도 아팠지만 마음은 뿌듯했습니다. 주무관 여러분들 강연 들어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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