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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15. 2022

안중근과 함께 이토를 상상한 김훈

김훈 소설『하얼빈』

성공한 소설은 주인공만큼 악당을 잘 그린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하얼빈』 역시 그렇다. 김훈은 20세기 초 대한제국의 실질적 통치자였던 이토 히로부미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는 천황을 신봉하는 신하이자 노련한 관료지만 무식한 독재자는 아니다. 조선 조정을 떠나는 이토의 송별연을 위한 연설문을 쓰는 장면은 이런 이토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는 관방에서 글 잘 쓰기로 소문난 비서관이 작성한 연설문이 너무 추상적이라 버리고 스스로 쓰기 시작한다. 서양 사람들이 혁명이라 부르는 걸 그는 유신(維新)이라 칭한다. 유신으로 개벽하는 일본은 동양평화의 큰 틀 안에서 조선을 경영하는 것이다, 라는 뜻을 조리 있고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그는 쓰고 또 쓴다. 왜 이런 장면이 나오는 걸까. 적어도 우리의 주인공 안중근이 죽이려는 인물이 이 정도는 되어야 대의명분이 서고 드라마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토가 놀란 것은 유생들의 자결이 아니라 백성들의 민심 폭발이었다. 그래서 그는 무력 외에 논리로도 조선 침략의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고 안중근은 그런 그를 어떡하든 막아야 하는 사명이 있었던 것이다. 이 소설의 처음 제목이 '하얼빈에서 만나자'였다는 것은 이야기의 핵심이 이 대단한 두 인물의 대결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젊은 시절의 김훈을 울렸던 글은 격정적인 문학 작품이나 철학자의 금언이 아닌 안중근의 취조문이었다고 한다. 가식이나 부연 설명 없이, 자신의 안위나 미래를 돌보는 기색 없이 하고 싶은 얘기만 간결하고 담담하게 기술하는 안중근의 인품에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소설 속에 그대로 드러난다. 안중근에게 세례를 주었던 빌렘 신부는 그가 '소년 시기를 거치지 않고 유년에서 청년으로 건너온 사람처럼 보였다'라고 말한다. 30대 초반에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 안중근은 꼭 해야 할 일 외의 다른 모든 요소들을 제거한다. 이는 그와 함께 이토 암살에 나선 우덕순도 마찬가지다. 신분과 경제적 사정 등이 엄연하게 달랐던 두 사람은 이토가 하얼빈에 온다는 소식만으로 뜻을 합친다.


'왜 나를 따라나서는가?'라는 안중근의 물음에 그는 "그런 것은 말할 필요 없다. 앞으로도 말하지 말자."라고 대답한다. '돈은 어떻게 구하는가?'라는 우덕순의 물음에 안중근도 "그런 것은 말하지 않겠다. 앞으로도 묻지 마라."라고 말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거사를 앞두고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그들이 하는 일은 새 옷을 사고 이발을 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잡힐 때 깨끗해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안중근의 위대함은 이토를 죽인 일보다 그 이후의 당당함에 있다. 보통 범인들은 추례하기 마련인데 안중근은 떳떳했다. 대의가 있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토를 어떡하든 눌러야 한다는 생각, 이토를 죽이는 건 '목적이 살(殺)에 있지 않고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것에 있다'는 생각은 이름난 포수였던 안중근이 얼마나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의 판단에 따르는 현대 지식인의 면모를 지녔는지 잘 보여준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위해서는 이토를 죽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던 서른 살 식민지 청년의 담담한 기록. 김훈이 아니라면 이토록 건조한 문장들에 이토록 뜨거운 것들을 불어넣을 수 있었을까. 존경할 만한 어른 안중근의 이야기를 존경할 만한 소설가 김훈이 썼다. 이미 베스트셀러지만 그래도 아직 안 읽은 분들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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