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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20. 2022

새벽에 쓰는 독하다 토요일 후기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

어제는 양익준 감독이 하는 동네 카페 '빠뿅'에 가서 와인과 위스키를 많이 마셨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독서 모임 '독하다 토요일' 멤버들이 어제는 모임 끝나고 거기서 뒤풀이를 하기로 했었거든요. 이번 달 '독토'는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이었습니다. 여행사에 다니는 요나라는 프로그래머가 주인공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가 다니는 정글이라는 회사는 재난 지역을 찾아다니거나 기획하는 '다크 투어' 여행사였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그녀가 휴가 대신 베트남의 무이라는 곳으로 출장을 떠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저는 강연 준비와 개인적으로 번잡스러운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느라 좀 바빴고 그나마 남는 시간엔 스티븐 킹의 신작 추리소설 『빌리 서머스』를 아껴 읽느라(정말 재밌습니다) 이 책을 펼치지 못하다가 어제 아침부터 시간을 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마당에서 책을 반쯤 읽었을 때 새로 산 노트북이 도착하는 바람에(결국 유명 브랜드를 포기하고 피지에 사는 친구 한상이가 골라준 699,000원짜리 저가 제품을 선택했습니다. 브랜드는 DELL. 일단 만족합니다. 새로 산 컴퓨터를 이 후기를 쓰고 있습니다. 아직 자판에 익숙하지 못해 오자를 많이 내고, 고치고 그러고 있습니다) 결국 책을 다 읽지 못하고 독토에 참여했습니다. 일찍 도착한 하늬 씨는 '꿀잼이다'라는 말로 소설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습니다. 같이 도착한 동현 씨도 일이 바빠서 저처럼 반 정도밖에 읽지 못했다고 했고요. 다들 재밌다는 평이 대세였습니다. 제가 읽은 부분 다음부터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면서 다들 저와 동현 씨를 놀렸습니다. 재희 씨는 '오랜만에 전원이 재밌다고 하는 소설이 나왔다'며 웃었습니다. 재희 씨 말에 의하면 나온 지 오래된 소설이 영국 추리작가협회 대거상을 수상하는 바람에 '역주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작 이 소설을 고른 저는 그런 사실을 몰랐습니다. EBS 북카페 등에서 윤고은 작가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아서 언제가 읽어봐야지, 하고 있다가 골랐으니까요.


전날 소금책 행사에서 먹다 남은 '고래사 어묵'을 내놓아 독토 회원들의 감탄을 부른 윤혜자 씨는 작가의 나이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1980년생인데 서른 살 조금 넘는 나이에 이런 소설을 썼다며 놀라워했습니다. 이어 효성 씨 성희 씨 등이 윤고은의 외모를 칭찬했습니다. 예쁘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장 스마트폰을 꺼내 윤고은을 검색했습니다. 인물이 번듯하더군요. 이렇게 얼굴도 예쁜데 글도 잘 쓰다니, 하며 누군가 탄식을 하는 바람에 모두들 웃었습니다. 윤혜자 씨는 소설 진행이 쑥쑥 나가는 맛이 있고 무엇보다 작가가 회사 생활을 해본 사람 같아 듬직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설 내용이 얼마 전 있었던 10.29 사태와 닮아서 가슴이 아프다고도 했습니다. 재희 씨는 넷플릭스에서 하는 재난 여행 프로그램을 본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그런 설정의 극단적 예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인 것 같다고 했더니 맞다고 했습니다.

하늬 씨가 '스토리텔링이 뻔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아 좋았고 작가가 뿌린 단서들이 허투루 쓰이지 않고 다 들어맞아서 놀랐다'라고 했습니다. 재희 씨가 '예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한 것도 같은 얘기였습니다. 성희 씨는 저처럼  EBS 북카페 사회자로만 알았던 윤고은이 이렇게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인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영국의 추리소설상을 받은 걸 생각하면 이 책은 번역을 해도 뜻이 잘 통하는 문장이라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작가가 보편타당한 문체로 잘 쓴다는 얘기죠. 재희 씨가 이런 좋은 작가는 널리 알려야 한다며 목청을 높였습니다. 효성 씨도 너무 재밌어서 두 번이나 읽었다고 했습니다. 혜영 씨는 공교롭게도 이 책을 밤 기차 안에서 읽었는데 그 느낌이 남달랐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무섭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그렇지는 않고 색다른 느낌이어서 좋았다고 했습니다.  


동현 씨가 책을 읽으며 드라마 《작은 아씨들》이나 영화 《베스트 오퍼》가 떠올랐다고 했고 재희 씨가 베스트 오퍼는 참 아름답고 잘 짜인 캐이퍼 무비였다고 하는 바람에 《이탈리안 잡》이나 《오션스 일레븐》 《도둑들》 등 케이퍼 무비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티븐 킹의 빌리 서머스 얘기를 하며 스티븐 킹은 내용은 물론이고 글도 참 잘 써서 너무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소설은 특히 암살자의 이야기인데도 내용이 따뜻해서 아껴 읽었다고 했더니 아름 씨가 소설에 흥미를 보이길래 즉석에서 빌리 서머스 1,2권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걸 들은 아내가 적어 놓으라고 해서 마루 기둥에 있는 달력 뒷면에 '빌리 써머스 1,2권. 정아름. 2022. 11. 18'이라 써넣죠, 물론.  

재난까지 만들어서 소비하는 자본주의의 나쁜 행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혜자 씨가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가 자신의 인생 책이라 얘기했고 최근 청치권의 안하무인식 사태 인식과 인권 의식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이에 혜영 씨가 '공감은 지능 순이다'라는 러시아 학자의 말을 소개하는 바람에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늘 할 얘기가 없다고 하면서도 말을 꺼내면 길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기홍 씨가 마지막으로 소설 얘기를 하다가 10.29 사태 때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 걱정만 먼저 했던 점을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이밖에도 소설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가 오고 갔지만 다 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윤혜자 씨와 혜영 씨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저는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빠뿅'에 가서 와인을 시켰습니다. 양익준 감독은 없고 그의 동생이자 동업자인 경희 씨가 있더군요. 와인 한 병을 다 마셨을 때 윤혜자 씨가 와서 와인 한 병을 더 시켰고 제가 도수 높은 맥주 없냐고 물었더니 "그러지 말고 차라리 위스키를 마시지 그래?"라는 윤혜자 씨의 권유로 위스키를 마셨습니다. 양익준 감독이 와서 열심히 안주를 만들었고 우리는 위스키를 마시고 웃고 떠들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길고양이 사진을 찍고 위스키를 마시고 마시고 마시고 하다 보니...... 저는 집에서 자고 있더군요. 네시 반에 목이 말라 눈을 뜨고 마루로 나와 이왕 눈 뜬 거, 하고는 노트북을 켜고 이 후기를 두 시간째 쓰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열어보니 네가 어젯밤 10시 41분에 빠뿅으로 돈을 입금했더군요. 음, 많이 나왔습니다. 아아, 양익준 감독과 경희 씨가 어제 장사 좀 했군요. 그러나 우리에겐 'N분의 1'이라는 제도가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 일요일 오전에 독토 회원들은 돈 내라는 단체 문자를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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