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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21. 2022

좋아하는 시집을 열어보는 느낌의 앨범

요조의 《이름들(Names)》

나는 요조의 레코드를 들을 때마다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열어 읽는 기분이 든다. 남자 친구가 허리가 안 좋아서 일어날 때마다 에구구구 하는 소리가 좋아 미치겠어요,라고 하거나 자기도 날개가 있었는데 엄마한테 등짝을 너무 많이 맞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이라니.

그리고 그의 노래를 들을 때면 1960년대 전설적인 앨범《벨벳 언더그라운드》가 떠오른다. 읊조리듯 가냘프게 흘러나오는 요조의 목소리는 그 옛날 마리안느 페이스풀이나 믹 재거의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단선적이지만 어떤 포크송적인 원형을 보여준다. 이전에 나왔던 싱글 <모과나무>도 그렇고 이번에 새로 만든 앨범 《이름들(Names)》의 첫 번째 곡 <Tommy> 역시 그렇다. '별이 많이 뜬 밤엔 산 위에 올라가 점들을 하나하나 이어가며 이상한 별자리를 만들곤 해'라는 가사는 시집으로 옮겨 실으면 그대로 한 편의 시 아닌가. 여기에 선배 뮤지션 이능룡의 기타와 프로듀싱 능력이 더해져 멋진 앨범이 나왔다.


뮤직 비디오는 또 어떤가. 나는 <Tommy>라는 곡의 모티브가 된 장애인 스탠드업 코미디언 한기명이 궁금해서 그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박나래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에 나오는데 "그렇게 부러우면 니들이 장애인 하든가"라고 관객들을 약 올리는 한기명의 떳떳하고 밝은 개그를 보니 뮤직 비디오에 나온 '오른팔'이 단박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요조는 한겨레에서 진행했던 인터뷰 코너를 통해 한기명을 만나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아티스트나 작가이기 이전에 인간적으로 그냥 다가가 누군가를 무장 해제시킬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가 일을 벌이면 다들 기꺼이 달려가 포로가 된다. 이런 자발적 종속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기꺼이 스톡홀름 증후군' 정도 될까.


아내는 새 앨범 중에서 <unknown Horses>가 가장 좋다고 한다.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라며 뒤에서 부르는 소리를 가볍게 무시하고 달리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노래 제목에 의해 말들의 말발굽 소리로 변한다. 요조가 말(Word)을 말(Horse)로 변환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치미를 떼고 정말 말이 달리는 것처럼 유유히 노래 부른다. '우리는 이름 없이 앞날을 흔들어 서로의 꿈을 돌려줄 거야'라고 속삭이면서.


앨범을 준비하는 동안에 요조가 인스타그램에 썼던 얘기 중 '노래를 만들 때면 시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내 생각엔 그가 이미 시인이라서 그렇다. 그렇다면 그의 앨범을 들을 때마다 좋아하는 시집을 펼치는 느낌이 드는 나의 의문도 가볍게 풀린다. 시인들은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지만 요조는 콘텐츠 회사에서 앨범을 낼 뿐이다. 그러니까 이 앨범은 펼치면 음악이 나오는 시집인 것이다. 아직 못 들어봤다면 어서 유튜브라도 검색해 보시기 바란다. 가사도 멜로디도 정말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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