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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23. 2022

스티븐 킹이 만들어 낸 따뜻한 킬러 이야기

스티븐 킹 소설『빌리 서머스』

오동진 기자는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이라크전에서 제이미슨 중령이 게릴라들의 공격을 받아 얼굴 반쪽이 날아가고 눈알이 삐져나온 채 고통으로 발광할 때 그를 위해 대원들 전부가 동요 '테디 베어의 소풍'을 합창하는 대목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스티븐 킹의 새 소설  『빌리 서머스』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아니, 나는 거기 말고도 이 장면이 그렇게 좋더라, 하며 앞다투어 책을 펼칠지도 모른다.

나쁜 놈들만 죽이는 특급 저격수 빌리 서머스의  마지막 임무에 얽힌 이야기를 다룬 소설 『빌리 서머스』를 지난주 내내 읽었다. 스티븐 킹은 범죄자를 다룬 모든 소설과 영화가 그러하듯 '이번 일만 마치면 이 바닥 뜬다'는 주인공의 바람이 언제나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주인공의 입을 통해 언급한다. 소설가인 척하며 동네 사람들 삶에 스며들던 빌리의 마지막 암살 임무도 처음엔 단순한 것 같더니 날이 갈수록 수상해진다.

그런데 엄혹한 킬러의 이야기일 거라는 짐작과 달리 소설은 갈수록 정의롭고 따뜻해진다. 더구나 빌리는 에밀 졸라 등 유명한 소설가들의 작품을 암송할 정도로 지적인 인물이지만 청부살인을 위해 시종일관 멍청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영악한 인물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을 찾아보니 어떤 분은 소설 끝나는 게 아쉬워 뒷부분을 일부러 천천히 읽었다고 썼던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1권 마지막에 우연처럼 등장한 앨리스와 빌리 두 사람이 펼쳐가는 이야기 전개가 기본적으로 너무 따뜻해서 페이지를 빨리 넘기는 게 싫어질 정도였고 마지막 장면은 역시 눈물겨웠다. 2부에서 앨리스의 복수를 위해 세 명의 청년들을 위협하는 장면은 너무나 아이디어가 치밀하고 통쾌하다.


스티븐 킹은 왜 아직도 소설을 쓸까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작년에 우리 동네 아리랑도서관에서 그의 소설 『스탠드 바이 미』와『쇼생크 탈출』을 빌려 읽고는 깜짝 놀랐다. 영화로 알고 있던 이야기는 소설이 두 배 이상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잠깐 등장하는 인물 하나도 허투루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정말 그 사람을 오랫동안 보고 쓴 것처럼 집안 이야기나 과거사, 남과 다른 특징이나 성격을 작품 속에 세세하게 박아 넣었다. 소설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놀라운 건 수십 년 간 공포와 판타지 소설의 대가였던 그는 '빌 호지스 시리즈'를 통해 돌연 탐정 소설가로 변신했다는 사실이다. 그 사이에 케네디 암살을 다룬 타임 루프 소설 『11/22/66』을 쓰기도 했다. 엄청난 부를 획득하고 인기 절정의 소설가일 때 치명적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던 75세인 스티븐 킹은 지금도 계속해서 새로운 장르의 아이디어를 내고 이야기 쓰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그가 『11/22/66』에서 유난히 음식값이 쌌던 식당의 토끼굴을 생각해 내고는 얼마나 좋아했을까를 상상하면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스티븐 킹은 진정 대단한 소설가다. 그러니  『빌리 서머스』를 어서 읽으시기 바란다.  진짜 재밌다. 다 읽고 재미없다는 사람은 내게 책을 들고 오시라. 기꺼이 책값을 배상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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