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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25. 2022

재미도 의미도 있는 소설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

인간은 이상한 동물이다. 소설가 김진명의 산문집 제목처럼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선택하기도 하는 존재니까. 윤고은의 『밤의 여행자들』은 그런 인간의 어두운 속성을 비즈니스에 접목한 여행사의 직원 이야기다. 다크 투어 여행사 직원인 요나는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휴가 대신 베트남의 무이라는 곳으로 출장을 가게 된다. 무이는 폴(아무도 정확하게 그 정체를 모른다)이 요즘 돈을 많이 들여 새로운 '재난 여행 상품'을 기획하는 곳이다. 열차에서의 작은 실수로 무이에 머물게 된 요나는 마을 운동회가 열리는 날 거대한 비극이 생기도록 연출하려는 매니저와 시나리오 작가의 음모에 동참한다. 그래야 이 프로젝트가 요나 말고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실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 더 큰 음모가 깔려 있음을 알게 된 그녀는 뒤늦게 프로젝트에서 빠지고 싶어 하지만 이미 탈퇴도 퇴직도 불가능한 딜레마에 빠진다.


EBS 북카페 등 진행자로 널리 알려진 윤고은 작가는 10년 전에 쓴 이 작품으로 최근에 영국 추리작가협회 대거상을 수상해서 화제다. 왜 뒤늦게 그런 큰 상을 받게 되었을까. 늦게 번역이 되어 이제야 영국 등지에서 읽혔을 확률이 크지만 무엇보다 상을 받을 만큼  보편타당한 아이디어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관광지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사건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설정이다. 여기에 성실한 자료 조사와(작가가 세계의 재난 사고를 꼼꼼히 조사한 흔적이 보인다) 무리 없는 맥락과 구성, 그리고 번역이 되어도 그 뜻이 변함없이 전달되는 문장이 한몫을 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재미도 의미도 있는 소설이라는 판단의 근거는 대거 상 수상 이전에 『한국이 싫어서』 『보건교사 안은영』 『82년생 김지영』 『해가 지는 곳으로』 『딸에 대하여』 『스노볼 드라이브』 등 젊은 작가들의 화제작들로 라인업 된 민음사 '젊은작가 시리즈'였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 봐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나는 요나가 요직에서 밀려나는 것을 김의 성추행으로 표현한 작가의 기발한 문장부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엘로카드를 받은 것 같긴 한데 그게 '우편이나 메일 혹은 인편으로 진짜 노란색 카드가 날아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는 구절에서  유머와 페이소스의 비범함을 느꼈던 것이다. 이는 계속 구간이 늘어나는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요나는 지하철  끝을 불로 지지고 싶었다. 헝겊의 끝을 불로 지지듯이, 더 이상 올이 풀리지 않게.'라는 문장도 마찬가지였다. 윤고은은 뻔해 보이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좋은 문장과 메타포들로 이야기를 탄탄하게 끌고 간다. 현지 직원인 럭과 처음 만났을 때 무심코 건네었던 행운의 2달러 지폐가 나중에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의 생사를 가르는 아이디어도 좋았다. 그러나 요나가 시나리오 작가 황준모와 '송년파티 화재' 사건을 언급할 때 시체가 가장 많이 발견되는 장소가 외투 보관소일 경우가 많다고 하는 장면에서 '압사'라는 표현이 나올 때는 섬뜩하고 괴로웠다. 비극적인 10.29 참사를 겪은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읽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추천하는 이유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한국소설을 읽는 모임 '독하다 토요일'에서 소설을 읽은 사람들이 "꿀잼이다." "오랜만에 전원이 재밌다고 하는 소설이 나왔다."라며 만족감을 나타낸 소설이기 때문이다. 일독을 권한다. 나중에 드라마로 나오면 보지, 이러지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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