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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Nov 30. 2022

어제 받은 선물

성대 앞 어린이청소년국학도서관 글쓰기 강연 후기

성균관대학교 앞에 있는 어린이청소년국학도서관에서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중심으로 글쓰기 강연을 했습니다. 저녁 7시 반부터 9시 반까지였는데 너무 재밌어서 결국 10시에 끝났죠. 집에서 가까워 도서관까지는 걸어서 갔습니다. 경신고등학교 쪽으로 걸어가니 금방이더군요. 조금 일찍 도착한 제가 도서관 내부에 붙어있는 강연 포스터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며 그 부스 안에 있는 분에게 '왜 도서관에 국학이라는 말이 붙었냐고 물었더니 단재 신채호 선생이 쓰신...국학이라는 게...이라고 설명을 해주시다가 "사실은 저 여기 직원이 아니라서 잘은 몰라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부스 안에서 잠깐 PC 작업을 하고 계시길래 질문을 해본 건데 괜한 걸 물었나 해서 죄송했습니다. 박소영 사서와 또 다른 사서 두 분과 인사를 나누었고 저를 초청해 주신 종로문화재단의 심혜영 과장님도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어제는 특이하게도 부부가 두 쌍이나 오셨습니다. 그중 한 쌍은 '혜화동에서 시바견을 키우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셨는데 부인은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남편은 블로그에 서평을 120 권째 쓰는 중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또 한 쌍은 부인이 먼저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읽고 남편에게 권했고 내친김에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를 읽고 둘이 제주에도 다녀왔고 결국 어제 도서관 강연까지 오신 경우였습니다. 도서관을 좋아해서 요즘 김연수, 임경선 같은 작가들의 강연을 직접 들었다는 분도 계셨고, 주부인데 하루 다섯 문장 쓰기를 실천한다고 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목사님도 오셨고 간호사도 오셨고 에어컨 센터를 운영하시는 분도 오셨습니다. 교육연극을 만드시는 홍서연 선생 같은 경우엔 자신의 이름 서연을 굉장히 좋아해서 '서로연극연구소'를 만들고 전자책으로 '서로여는책'도 펴냈다고 합니다. 멋진 분이었습니다. 자신을 간호사라고 밝힌 분은 평소에 엄청, 굉장히, 대박 같은 센 단어를 많이 쓰는데 도서관에서 보내준 강연 제목에 '살짝'이 들어있길래 색다른 매력을 느끼고 올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이 분처럼 제 책을 안 읽었거나 제 이름조차 모르고 오신 분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모두 열심히 제 강연을 들어주셨고 여러 번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어제의 최고 대박은 최원일 선생이었습니다. 최근에 저랑 페친이 되었다고 하시길래 '저분을 어디서 뵈었더라?' 했는데 임지영 선생 북토크 때 사진을 찍던 작가분이었습니다. 그때 찍어주신 사진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그 사진은 별로 마음에 안 드니 새로 찍어도 되겠냐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고마운 말씀이었죠. 저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디지털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었습니다. 도서관엔 열여섯 분이 오셨지만 온라인 줌으로는 훨씬 많은 분들이 참여했고 질문도 남겨 주셨습니다. 오프라인 강연에 오겠다고 했던 MBC애드컴 후배 채윤정 씨는 온라인으로 참여했더군요. 저는 재밌는 일이 있어야만 재밌는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고 어떤 일상이든 메모를 하고 천천히 곱씹다 보면 좋은 글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역설에 두 가지 뜻이 있는 거 아시죠? 뒤집는다는 말 말고 강조했다는 뜻도 됩니다). 강연이 끝나고 책을 가져오신 분들께 사인을 해드렸습니다. 근처 다른 도서관 사서님도 제 책을 가져오셨길래 사인을 해드렸죠. 어린이청소년국학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 한 분이 제 책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전철 안에서 읽다가 빵 터졌다고 하시길래 어떤 부분이었느냐 물으니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대목이라 했습니다. 안 그래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이름이 너무 길다 싶어서 '동대문'을 빼려니 곤란하고 '문화'를 빼려니 섭섭하고 하며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지날 때 그 꼭지를 읽었다는 것입니다.


유쾌한 마음으로 도서관을 나서니 밤바람이 매서워 춥더군요. 꽁꽁 언 손을 한 채 집으로 돌아와 술을 한 잔 마시고 싶은 걸 꾹 참고 몽스북에서 펴 낸 새 책을 읽고 있는데(아내는 저녁에 혼자 한성대입구역5번출구에 있는 경신반점에 가서 짬뽕에 고량주를 한 잔 했다며 자더군요) 최원일 선생이 아까 찍은 사진을 보내 주셨습니다. 당장 프로필 사진으로 써도 될 정도로 사진이 좋았습니다. 나중에 인물 사진들로 전시회를 여신다고 하니 한번 가볼 생각입니다. 어제는 뜻밖에도 선물 같은 하루였습니다. 최원일 선생의 사진도 마음에 들었지만 추운 날씨에도 저녁 7시경부터 남은 시간을 몽땅 제게 내어 주신 분들이야말로 가장 큰 선물이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지금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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