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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10. 2022

뒤늦게 찾아보는 화제작의 즐거움

영화 《드라이브》와 《겟 아웃》

영화 마니아라고 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으므로 화제작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모든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지만 그럴 순 없고 요즘은 뒤늦게라도 OT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최근에 그런 영화 두 편을 넷플릭스에서 찾아보고 리뷰를 쓰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나처럼 제목은 들어봤지만 아직 보지 못한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영화니까.

A.

《드라이브》는 오동진 기자가 스티븐 킹의 소설 『빌리 써머스』를 HBO 같은 데서 드라마로 만들 때 주인공으로 누가 좋을까 얘기하다가 라이언 고슬링을 추천하는 글을 통해 알게 된 영화였다. 2011년 니콜라스 빈딩 레프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타기도 했던 이 영화는 자동차 스턴트를 하며 아르바이트로 은행털이범들의 도주를 돕는 남자 이야기인데 오프닝의 카 체이싱 장면이 아주 침착하고 멋지다. 《라라 랜드》의 로맨틱 가이 라이언 고슬링이 이 영화에서는 웃음기 하나 없이 냉철한 드라이버 역할을 한다. 옆집에 사는 유부녀 캐리 멀리건도 멋지고 그녀의 남편으로 나온 오스카 아이작은 이 영화를 발판으로 해서 코엔 형제의 영화 《인사이드 르윈》에 출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더 대박은 라이언 고슬링을 돌봐주는 자동차 정비소 사장 셰넌 역의 브라이언 크랜스턴이 이 영화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명작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 화이트 역을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2015년 영화《트럼보》에서의 시나리오 작가 연기도 너무 좋다)

일단 영화의 짜임새가 좋고 주인공은 물론 악당들의 연기도 좋다. 면도칼이나 포크 등으로 사람을 죽이는 장면들이 끔찍하고 잔인한데 버니 역의 앨버트 브룩스는 잔인한 인상을 주기 위해 눈썹을 밀고 출연했다고 한다. 평론가들이 알란 랫드 주연의 옛날 영화 《셰인》을 들먹이는 것처럼 라이언 고슬링은 캘리 멀리건을 사랑하게 되지만 결국엔 떠난다. 나는 캘리 멀리건의 남편 이름 스탠더드를 가지고 '스탠더드, 딜럭스' 하며 농담을 하거나 앞부분에 악당이 꼬마에게 주고 간 총알이 뒤에 어김없이 중요한 장면에 쓰이는 걸 보면서 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좋다는 것을 눈치챘다. 유일하게 마음에 안 드는 건 제목이다. 많은 사람들이 '드라이브'라는 제목 때문에 그저 그런 카 체이싱 영화로 오해했다고 하니 제목의 중요성을 또 한 번 느낀다. 그런 면에서 원빈 주연의 《아저씨》가 흥행에 성공한 건 기적에 가깝다.

아무튼 라이언 고슬링의 매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멋진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갱영화는 평범하고 재미없게 사는 게 얼마나 어렵고 소중한 일인가를 깨닫게 해 준다. 그래서 우리는 비타민 챙겨 먹듯 이런 영화를 정기적으로 찾아봐야 한다.

B.

나는 공포영화야말로 가장 영화적인 구석이 많은 장르고 이런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들이야말로 아이디어가 넘치는 부류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조던 필 감독의《겟 아웃》은 이전부터 좋다는 얘기를 수 없이 들었고 실제로 IP-TV로 구입해서 앞부분을 십 분 정도 본 적이 있지만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결국 놓쳤던 영화였다.

영화 초반에 로즈의 남자 친구 크리스와 아빠 제러미의 대화에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얘기가 왜 나왔을까 궁금했다. 이런 이야기는 앞부분에 던져 놓은 단서가 후에 중요하게 쓰이는 걸 알아채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커플이 등장하지만 인종 갈등보다는 그걸 뒤집어 서스펜스의 지렛대로 삼는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여자 친구의 집으로 인사를 하러 온 날 공교롭게도 그 집에서 마을 잔치가 열린다는 설정부터 의심스럽더니 영화는 중반을 지나 정신과 의사인 로즈의 어머니가 크리스의 흡연 습관을 고쳐주겠다며 최면술을 거는 순간부터 급물살을 탄다.

《13일의 금요일》부터 《콰이어트 플레이스》까지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영화가 있는가 하면 이런 영화처럼  서스펜스 중심의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했던 함정이 어디서 나타나나 지켜보는 재미가 크다. 그리고 악당을 맞아 주인공이 고난을 당하다가 어떻게 거기서 빠져나오나 하는 아이디어도 궁금하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 악당이 공동체라면?' 이라며 한술 더 뜨는 전략을 구사한다.

물론 찻잔과 스푼 만으로 그렇게 최면술을 완벽하게 구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종합병원도 아니고 집에서 뇌수술을 한다는 것도 의학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 더구나 두 개의 인격이 한 사람 안에 존재한다는 건 현대 과학으로는 더더욱 말이 안 된다. 그러나 그런 엄격한 잣대는 '하드 SF'에나 들이댈 일이다. 조던 필 감독의 이 일련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은 '로튼 토마토 신선도 지수 99%'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관객들의 찬사에 의해 미국 본토에서 재조명되었을 정도였으니까.

어제 동네 카페 빠뿅에 가서 양익준 감독에게 이 작품 얘기를 했더니 "데뷔할 당시의 M. 나이트 샤말란이 생각나는 영화였어요."라고 말하며 그의 최신작  《놉》을 꼭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 사이에 《어스》란 영화도 하나 더 있다고 말해줬지만 사실은 나도 아직 그 영화들을 아직 못 봤다. 빨리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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