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Dec 15. 2022

연애소설을 더 재밌게 읽는 법

이동섭의 『사랑의 쓸모』

『돈키호테』나 『모비 딕』 같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소설은 역시 연애 소설이 제 맛이다. 소설을 뜻하는 프랑스어 로망(roman)도 중세 성직자들이 쓰던 라틴어가 아닌 로마어로 쓰여진 통속적인 이야기라 그렇게 불렀다니까. 이동섭의  『사랑의 쓸모』(몽스북)는 사랑과 연애, 그리고 섹스에 관한 고전 소설 17권을 골라 작품의 의미와 숨은 뜻을 요모조모 살피는 인문서다.  ‘제목은 알지만 정작 읽지는 않은 책’이 고전이라지만 그래도 대강의 내용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사랑의 쓸모』는 아는 척하기 위해 읽는 게 아니라 '어렸을 때 읽은 고전'을 다시 펼칠 때 어떤 점에 주목해 읽어야 하는지 힌트를 주는 책이다. 그러니까 내비게이션을 켜고 명작의 세계로 들어가는 격이라고 할까.  이 책은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다른 작품의 주인공을 소개하는 ‘예고편’ 같은 글이 등장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가끔은 본문에 써도 될 얘기를 논문처럼 각주로 달기도 한다. 내용과 형식에서 여러 모로 재미있는 책이다. 물론 연애와 섹스를 다루다 보니 야한 해설도 좀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제이 개츠비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돈으로 데이지의 마음을 사려했던 그는 위대하기는커녕 자신의 매력 포인트가 뭔지도 모르는 바보였던 것이다. 새로 알게 된 게 이것 만은 아니다. 셰익스피어가 침실(bedroom), 비평(critic), 연애편지(love letter) 같은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한 작가라는 사실도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적과 흑』 『오셀로』『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노르웨이의 숲』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안나 카레니나』 등 우리에게 친숙한 소설들이 ‘사랑의 쓸모’라는 큰 제목 아래 도열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의 쓸모라는 타이틀은 ‘소설의 쓸모’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작가가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소설을 읽는다. 거기에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의 미카엘 하네케 감독은 "영화란 진리를 위한, 혹은 진리를 찾기 위한 초당 24개의 거짓들이다."라고 했다. 능숙한 이야기꾼들은 사실 다 거짓말쟁이라는 얘기다.


도대체 이런 지식과 통찰을 겸비한 이동섭이란 인물은 누구인가 찾아보니 파리 제8대학에서 조형예술학, 사진학, 현대예술과 뉴미디어 등으로 학사와 석사를, 예술과 공연미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이동섭의 패션인문학’, ‘이동섭의 빠담빠담’ 등의 칼럼을 한국일보와 한겨레에 연재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EBS클래스e 등에서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를 융합시키는 강의도 했다. 유튜브로 찾아보니 강연도 잘한다. 이것저것 너무 우수해서 호감이 안 가는 인간형이다. 그래도 이런 책은 한 권 사서 틈 날 때마다 들춰 보길 권한다. 책꽂이에 몇 년 동안 꽂혀있던 고전 소설이 어느 날 나를 향해 손짓할 때 이 책을 먼저 만나고 가면 얼마나 푸근할 것인가.  참고로 책표지에서 장미 향에 몸을 맡기고 있는 여성은 『마담 보바리』의 주인공 엠마다. 저자는 이 소설을 설명하면서 비속어를 쓸 수박에 없었노라 고백한다. 이유가 궁금하면 지금 서점으로 달려가서 그 부분을 펴보시라. 아마 자신도 모르게 책을 들고 계산대 앞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사랑의쓸모 #이동섭 #몽스북 #고전소설을재밌게읽는법 #연애소설  #review #성북동소행성 #편성준 #mangmangdy_book_2022  

매거진의 이전글 뒤늦게 찾아보는 화제작의 즐거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