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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02. 2019

지금도 일을 벌이고 있는 83세의 무모한 젊은이

데이비드 호크니 전


지난 금요일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전을 관람했다. 요즘 서울에서 가장 핫한 전시회답게 햇볕이 내려쬐는 평일 낮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아내가 티켓박스에서 예매한 표를 찾는 동안 내 뒤에 서 있던 50대 말이나 6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서울시에서 주관한다면서 돈은 왜 받아?" (서울시립미술관을 서울시로 잘못 읽은 모양이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데 왜 한쪽 창구는 막아놓고 줄을 길게 서게 해?" "옆 창구 사람 밥 먹으러 갔나 보다..." 굳이 악의가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원래 투덜거리는 체질인 것 같았다. 나는 아주머니의 끊임없는 수다에 웃음을 깨물며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1층에 백 원짜리 개인라커가 있어서 노트북과 책이 든 배낭을 넣고 홀가분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일인 당 삼천 원 하는 오디오 도슨트도 신청했더니 감상이 훨씬 편했다. 전시장은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들어갈 때마다  표를 내보여야 했다. 일러스트와 초상화로 표현된 초기작을 거쳐 미국에서 수영장을 그리던 시대로 넘어가니 작가의 현대적 공력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저 이름 정도만 들어봤던(데미언 허스트의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토픽을 읽은 적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런던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미국으로 건너가서 더욱 꽃을 피운 경우였다.


전시장 안에서 촬영을 전면 금지시킨 것은 너무나 훌륭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면 다 나오는 그림들인데도 막상 작품 앞에 서면 사진을 찍어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게 사람들의 속성이다. 그런데 이번처럼 휴대전화로도 촬영을 못하게 하니까 더욱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호크니는 동성애, 인물, 풍경 등 여러 가지 주제로 옮겨 다니며 참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표현하고 싶은 게 있으면 캔버스에 갇히지 않고 두 개의 캔버스를 이어 붙여 초상화를 그리는 식이었다. 사진으로 대상을 먼저 찍어서 그걸 보고 그렸다는 것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작품 오른쪽 밑에 있는 번호를 누르면 오디오 도슨트가 작동하는데 어느 순간 안 들리길래 전시장에 서 있는 직원에게 달려가 배터리가 방전된 모양이라고, 이게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여직원이 "배터리가 다 되면 이러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어머, 리시버 잭이 빠져 있네요. 손님."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나는 아하, 그렇군요! 하고 과장되게 큰 소리로 웃었고 그걸 지켜보던 아내가 "내가 살 수가 없다."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른 전시장으로 향했다.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관도 있었다. 데이비드 호크니가 런던의 어떤 숲을 몇 개월 간 그리는데 조수들이 커다란 캔버스 수십 개를 이어 붙여놓으면 그가 직접 다가가 담배를 꼬나물고 그림을 찍찍 그리는 엄청난 퍼포먼스였다. 전통적인 페인팅은 물론 사진, 컴퓨터 등등 늘 첨단을 달리며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는 그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자니 테크닉의 무불통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생각나기도 했다. 다큐는 시종일관 유쾌했고 그는 정력이 넘쳤다. 작품의 자유로움에 대해 비평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머릿속으로는 못 갈 데가 없어요(In your head, You can go anywhere)라고 한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고, "이건 안 그린다고 했잖아요?"라는 질문에 "예술가의 말을 믿지 말고 그의 행동을 믿어야 해요"라고 눙을 치며 웃기고 했다.  중간에 데미안 허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나오는데 정말 멋지고 부러웠다.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무슨 일을 벌일까 궁리하며 인생을 흥미진지하게 사는 사람, 그가 바로 83세의 데이비드 호크니였다. 전시장을 나오는데 그가 그린 그림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는 부스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전시회는 7월 1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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