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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Dec 23. 2022

경기민요는 야질자질해야 제맛이지!

이희문의 '한달한옥' 공연 : 경기민요 12잡가


'씽씽밴드'에서 리더로 활동하는 등 파격적인 소리꾼으로 유명한 이희문은 다른 소리도 잘 하지만 특히 경기민요를 부를 때 일품입니다. 그가 안국동에 있는 한옥에서 한 달간, 하루 여섯 명의 관객만 모시는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가 놓치지 않고 용케 예매를 했습니다. 같은 날 볼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워낙 빨리 매진이 되는 바람에  저는 목요일 낮, 아내는 금요일 낮 티켓을 구했습니다(티켓값은 일인 당 10만 원).

헌법재판소를 지나 왼쪽으로 돌면 나타나는 아름지기 한옥으로 들어서니 진행자 여성 한 분과 소리꾼 이희문이 보였는데 제가 인사를 하자 "식사는 하셨어요? "라고 이희문 선생이 무람하게 물어서 금방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방으로 들어가 벽장 안에 있는 옷걸이와 신발장에 외투와 운동화를 수납하고 앉아 있는데 누가 반갑게 알은체를 하며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마스크를 벗고 보니 거문고를 하는  안정희 선생이더군요. 안 선생은 저희 집에서 하는 '소금책'에도 두 번 오셨고 현경채 선생의 북토크에서 사회를 보기도 했던 분입니다. 조금 있다가 최예선 작가도 오신다고 하며 반갑게 웃었습니다.

영덕에서 오신 관객 한 분은 이희문 선생에게 드리려고 타우린을 먹여 기른 닭이 낳은 달걀을 한 판(그래서 이름이 타우란) 가져오셨습니다. 이 분은 가수 김범수의 모든 콘서트를 보러 서울에 자주 오시는데 이희문 소리꾼 역시 좋아해서 이번에 또 왔다고 했습니다.  닉네임이 '도니공주'라고 하신 분은 모교에서 30년 동안 영어교사를 하고 이어 교장이 되는 바람에 또 교장선생님으로 8년을 일하셨다고 합니다. 도니공주님이 우리의 닉을 물으시길래 어리둥절했더니  팬카페는 다 닉네임으로 통한다고 설명을 하시더군요. 그러니까 이 분은 이희문의 팬카페에서도 활동하시는 왕팬이었던 것입니다. 이희문 선생을 자꾸 '별감님'이라고 부르는 게 신기해 물었더니 이희문 선생이 나서서 고종 때 총애를 받던 소리꾼 박춘재 선생의 직책 '가무별감'에서 따온 닉네임이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올해 '7학년 1반'이라고 밝힌 도니공주님은 별감님을 좋아하는 이유로 소리도 잘하고 아이디어도 좋지만 특히 '딕션이 너무 좋지 않느냐'라며 목소리를 높이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우리들은 "역시 영어 선생님은 달라." 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카피라이터를 하다가 지금은 작가 생활을 하는 사람이고 말했고 최예선 작가도 '근현대 예술과 건축에 대한 글을 주로 쓰는 작가'라고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이희문 선생은 서촌에 있는 한옥에 갔다가 소리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옥이 주는 울림이 너무 좋아서 이런 콘서트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좁은 한옥에서 소리를 하니까 많은 사람을 모실 수는 없고 대신 기간을 넉넉히 잡아 일반 관객들에게 매일 '12잡가'의 묘미를 알려 주자는 것이었죠. 잡가 중에서도 백미라는 유산가를 비롯해 소춘향가, 형장가 등을 들려주는 사이사이 이희문이 소리를 하게 된 사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활동하던 스물일곱 살의 이희문은 음반 산업이 기울어 직업을 바꾸어야겠다는 결심이 서자 어렸을 때부터 엄마한테 와서 함께 놀던 인간문화재 이모들이 떠오르더랍니다. 그중에서도 어머니의 스승인 묵계월선생이나 춘희 이모 등이 모여 맨날 하던 소리가 경기민요였던 것이죠. 스승님의 표현에 의하면 '야질자질해야 제맛'인 경기민요는 이희문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그 길로 소리를 배운 이희문은 두 달 연습한 '제비가'로 상을 타는 바람에 늦은 나이에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학교) 국악과에 들어가 미친 듯이 소리를 배웠고 나중에는 엄하던 어머니에게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희문 선생은 '잡가'가 잡스러워서 붙은 이름이 아니라 경계가 모호하다는 뜻에 가깝다고 그 뜻과 유래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당대 유행하던 춘향가와 흥보가 중 히트송만 모아 레파토리를 삼아 작은 공연에 맞도록 만든 거죠. 선유가를 부르기 전 유절형식과 통절형식의 차이를  설명할 때는 나주소반과 강원도 소반을 예로 들었는데 아주 이해가 빠르게 되더군요. 춘향이가 곤장 한 대 맞을 때마다 숫자에 대한 언어유희 사설을 풀어놓는 십장가도 재밌지만 이몽룡과 성춘향이 이별을 그린 소춘향가는 "어머, 장국영이 살아 돌아온 줄 알았다, 얘."라는 감탄을 들을 정도로 섹시했습니다. 이희문은 낭창낭창하고 가녀린 목청에 높은음에서 절묘하게 꺾는 가성이 기가 막힙니다. 소리 하는 중간에 순진하게 "아하하하."하고 웃는 소리조차 너무 매력적이고요. 이희문은 모든 게 빨라진 시대에 이렇게 한옥집 방 안에 사람을 가둬 놓고 천천히 소리도 하고 얘기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운 좋게 여섯 명(그날 한 명이 못 와서 사실을 다섯 명)에 끼일 수 있었던 저는 "이렇게 바로 앞에서 공연을 보니 마치 신관 사또나 임금님이 된 기분"이라고 맞장구를 쳤고요.


씽씽밴드, 프렐류드 <한국남자> 프로젝트 등 대표적인 크로스오버 국악인으로 활동하던 이희문은 어느 날 '20년 동안 쏟아내기만 하고 채울 시간이 전혀 없었구나'라는 현타가 왔다고 합니다. 컬러풀한 가발과 썬글라스를 벗어던지고 초심으로 돌아가 경기민요를 다시 부르고 싶어진 거죠. 그러나 골방에 처박혀 정진하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고, 그래서 나온 게 관객 앞에서 하나씩 하나씩 내공을 쌓아가는 '한달한옥' 프로젝트였습니다. 잠깐 쉬며 화장실에 가는 시간 말고는 네 시간 내내 이희문의 '야질자질한' 목소리와 장구가 어우러지는 꿈같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이 집에서 먹고 자고 방도 쓸고 꽃도 꽂고 하면서 한 달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국악을 하는 사람 중에 늘 새로운 걸 모색하는 이희문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거죠.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챙기는 아내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함께 이런 자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안정희 선생, 최예선 선생 같은 분은 너무 멋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희문은 도제식 교육 대신 뒤늦게 소리에 입문한 사람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찾아 마음껏 뻗었던 것이고 그런 노력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경탄과 위로를 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위로를 받은 증거나 증인을 대라고 하면 영덕에서 타우란을 가져오신 선생님의 얘기를 하겠습니다. 그분은 "우리 집에서 우울할 때 남편은 블랙핑크 뮤직비디오를 봐요. 나는 이희문을 듣고."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이번 공연 놓치신 분들은 아깝다 생각 마시고 이희문의 다음 행보를 지켜봐 주십시오. 그는 지금도 끝내주지만 나날이 나아질 게 분명해서 더 기대되는 경기민요의 장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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