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Jan 09. 2023

슬픔의 끝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웃음

성현주의 『너의 안부』

2018년 봄 동기 개그맨 장도연과 함께 2박 3일 해외여행을 떠나던 성현주는 비행기 안에서 네 살짜리 아들 서후가 지금 응급실로 가고 있다는 남편의 음성 메시지를 듣게 된다. 짐작도 할 수 없었던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무너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무릎을 꿇고 대상도 정하지 못한 채 그저 하늘에 대고 비는 것뿐이었다.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성현주의 『너의 안부』는 어느 날 갑자기 응급실을 거쳐 집중 치료실에 들어간 아들 서후의 보호자로 살았던 한 엄마의 기록이다. 병원 이야기이고 결국은 아이가 떠났기에 시작부터 눈물을 뿌리지 않을 수 없지만 이 책에 눈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개그맨이라는 그의 직업 특성 때문인지 이 책은 독자를 울리다가 웃기다가 한다. 서후가 좋아하는 '공룡메카드'의 성우를 섭외해 나찬용의 멘트를 녹음해 보낸 국민 요정 정경미의 세심함엔 감격의 눈물이 흐르고 개그우먼 이모들을 '개구멍 이모'라 부르던 서후의 아이다운 발상엔 따뜻한 미소가 지어진다. 장례식장에서도 빛났던 KBS 공채 개그맨 선후배들의 빛나는 유머는 자칫 우울하기만 할 뻔했던 이 책에 빛을 전해준다. 이런 게 페이소스다. 다독가인 성현주는 글도 참 잘 써서 책을 펴면 앉은자리에서 다 읽힌다. 당연히 베스트셀러 딱지를 달았다.


성현주 작가의 책이 특별한 이유는 내가 그의 초고를 읽을 행운을 가졌기 때문이다. 성현주 작가는 우리 집에서 진행하는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 5기 수료생이다. 나는 그가 써 온 원고를 읽을 때마다 속절없이  눈물을 흘렸고 울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얼마나 좋은 책이 나오려고 초고부터 이렇게 사람을 울리는 거야.

책이 나오고 나서 읽어보니 역시 우리의 판단이 옳았다.  성현주는 준비된 작가였다. 집중 치료실에 들어오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사연을 다룰 때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았고, 서후 옆 침대에 계시던 순복 할머니에게 드릴 효도 라디오를 손에 쥐고 임종 소식을 들은 성현주의 모습은 그대로 '인간시대'였다. 그런가 하면 《개그콘서트》 '분장실의 강선생' 녹화 첫날 녹화 분장 그대로 청담동 술집으로 달려간 이야기는 개그맨 성현주 주변에 얼마다 끼가 많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는지를 상기시키는 에피소드였다. 남들은 모르는 이야기도 있다. 성 작가가 연극 《리처드 3세》를 보고 황정민 배우의 에너지에 충만해져 소주 마시고 대취한 날 그 앞에서 같이 마시고 고꾸라진 사람이 내 아내 윤혜자다(나는 그때 청주에서 책 원고를 쓰고 있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올리브 키터리지》, 《아직 멀었다는 말》, 《대도시의 사랑법》, 《모든 요일의 여행》...... 성 작가가 병원 생활의 시름을 달래며 읽었던 책들이다. 그는 이 책들을 읽으며 독서모임에 나갔는데 혹시라도 '애가 아픈 사람이 이런 데를 와?'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까 봐 서후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서후 장례식에 와 준 회원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란다. 그는 이 이야기 끝에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을 썼다.

나는 이 한 줄 속에 이 책의 주제의식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죽을 것 같은 일을 당해도 산 사람은 또 살아가야 하고 지독한 슬픔 속에서도 웃음꽃은 피어난다. 부디 많은 독자들이 성현주의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조금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그게 서후와 서후 엄마,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개구멍 이모들이 바라는 바일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어어, 하다가 8회까지 보고 말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