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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10. 2023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께

글쓰기 강연을 들은 분이 그날 저녁에 보내신 질문 쪽지

 

작년 11월 청주에 계신 선생님들의 인문학 모임에 가서 글쓰기 특강을 했습니다.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에서 명사 특강 할 때 만났던 선생님들이 제 얘기를  한 번 더 듣고 싶다며 초대를 해주셨던 것입니다(저는 청주에 대해 잘 모르고 책을 쓰러 가지 전까지는 청주와 아무런 연고가 없었는데 자꾸 가게 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초대해 주신 선생님이 제 책 제목에서 힌트를 얻어 '여보 나 청주에서 세 시간만 강의하고 올게'라고 쓰여 있는 풍금 메모꽂이를 만들어 주셨는데 너무 사랑스러워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고맙고 재치 있는 분입니다.

강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강연 후기를 쓰고 있는데 페이스북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더군요. 그날 글쓰기 강연을 들은 선생님 중 한 분이었습니다. 강연을 너무 즐겁게 잘 들었다고 하시며 자신도 글쓰기를 해보고 싶은데 막상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하루 정도 고민을 하고 생각을 정리한 뒤 짧은 답장을 드렸습니다. 오늘 에버노트 메모장을 정리하다 보니 그때 주고받았던 쪽지 내용이 다시 눈에 들어오더군요. 혹시라도 새해를 맞아 글쓰기에 관심을 가져 보거나 글쓰기를 시작해 보려는 분들께 도움이 될까 싶어 짧은 Q&A를 소개해 봅니다.


Q :

편성준 선생님, 오늘 청주에서 강의 너무 잘 들었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좀 더 여유 있게 질문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듣는 내내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마음이 꽉 차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직은 제 생각을 정리(성찰?)하는 수준으로 글을 쓰는 지라 SNS에는 잘 올리지 않습니다. 그냥 자랑삼아 쓰는 게 아닌, 뭔가 조금이라도 제게 도움(?)이 되거나 일상에서 무언가 건져 올릴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니 더 못 쓰겠더라구요. 제 생각의 깊이에도 자신이 없고... 실은 글을 쓰고 싶어서 글쓰기 모임에도 나가고 있고 그 모임에서 만든 책도 받아 보았지만 여전히 제 글이 남에게 읽혀지는 게 두렵고 부끄럽기만 합니다.

그래도 요즘은 페북에 글을 좀 써볼까... 하던 참에 오늘 강연을 들으며 '일기라도 매일 써보자, 다시 한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제가 글을 쓰고 싶은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마음이나 생각이 복잡할 때 글쓰기를 하고 나면 시원해지고 정리가 좀 되는 듯하지만 그건 순전히 저를 위한 글쓰기였으니까요.

이거,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메시지창을 열었다가 질문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그냥 목적 없이 쓰는 글을 좋아합니다. 우왕좌왕 말씀드려 죄송해요. 따뜻하고 친절한 강의 넘 감사했습니다!


A :

김 선생님. 편성준입니다.


어제는 제가 아침 일찍부터 다른 곳으로 이동해 강연을 하는 바람에 바로 답장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우선 제 강연을 들으러 와주셔서 정말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오셨다가 책 제목을 보고 '나도 부부가 둘 다 놀고 싶다고 생각했다'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글쓰기라는 게 참 막연하고 어렵죠. 김 선생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습니다. 거짓말이 아니고 어느 정도냐 하면, 아주 유명한 작가들조차도 '자신이 쓰고 싶은 게 뭔지 모른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자신이 쓸 글의 전체를 알고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써봐야 뭘 쓰고 싶은지 알게 된다'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죠.


'요즘 페북에 글을 써볼까 하는데, 정말 제가 글을 쓰고 싶은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라고 하신 말씀 백 번 공감합니다. 저는 '아주 쓸데없는 것'이라도 일단 써보는 게 어떨까 권합니다. 다만 쓸 때 테마를 먼저 잡으면 좀 더 쓰기 편합니다.

예를 들어 제 아내는 작년에 '옹졸하고 유치한 식사일기'라는 글을 거의 매일 썼습니다. 자기가 왜 매일 솥에 밥을 해 먹는지에 대해서도 쓰고, 밥상을 차리며 만나게 되는 식재료 얘기도 씁니다. 물론 그날 있었던 일이나 느꼈던 점도 자유롭게 씁니다(이 일기는 내년에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그 글을 눈여겨보던 출판사가 연락을 해봤거든요). 아내는 올해 '일상 채집 365'라는 테마로 쓰기로 했습니다. 집안일, 출판 기획, 뉴스에서 보고 느낀 점 등 일상에서 건지는 건 뭐든지 쓴다는 것이죠. 물론 쓰다가 잘 안 되면 테마를 바꾸기도 하고 중단도 합니다. 저도 '공처가의 캘리'라는 테마로 짧은 글을 쓴 지 꽤 되었습니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 순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생활 단막극 에세이 '토킹 캣 순자'를 가끔 쓰기도 하고요.


이처럼 김 선생님도 매일 쓸 수 있는 걸 테마로 잡아 '아무런 결론이 나지 않아도 되는 글'을 써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니까 매일 칠판 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쓰실 수도 있고요, '학교를 싫어하는 선생님의 일기' 같은 유머러스한 컨셉을 잡아봐도 좋고요.

일단 어렵지 않은 테마로 그냥 편하게 써보시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매일매일 쓰다 보면 점점 나아지고 하루하루 쌓인 글을 보면 뿌듯해지실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너무 좌우되지 마시고 일단 써보세요. 선생님이 만만하게 매일 쓸 수 있는 편한 테마를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 걸 김 선생님만큼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강연 잘 들어주시고 이렇게 질문까지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대답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뵙죠.


2022년 11월 12일 저녁

편성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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