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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16. 2023

마지막 문장에 담긴 인생의 진실들

『이제 그것을 보았어』 - 박혜진의 엔딩노트

어렸을 때 마지막이 너무 슬퍼서 다시 보면 혹시 해피엔딩으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그 영화를 다시 돌려보곤 했다는 얘기를 알고 있다. 민음사 문학편집자이자 비평가인 박혜진은 그러나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여주인공 잔느의 입을 빌어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닙니다."라는 소회를 밝힌다. 그런 면에서 문학은 인생을 닮았고 문학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다. 박혜진 작가가 마지막 문장을 소재로 칼럼을 쓰고 책으로 엮어낸 이유는 마지막 문장까지 가는 그 '여정'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책을 끝까지 읽은 사람만이 마지막 문장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정직하게 활자의 숲을 완주한 사람만이 마지막 한 마디의 무게를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마지막 문장까지 가본 사람이라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52개 문학작품의 주제 의식이나 키워드가 아주 명징하게 정리되어 있다. 예를 들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지나치게 진실했던 인간의 최후에 관한 소설이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든 살인의 동기에 대해서든 사회가 원하는 대답을 했으면 사형을 면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필요 이상으로 솔직하게 말하는 바람에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는 되려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만 말하는 그를 '실존적 영웅'의 위차로 끌어올린다. 문학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너무 솔직해서 망한 인간은 또 있는데, 셰익스피어가 쓴 『리어 왕』의 막내딸 코델리어다. 그녀는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미사여구 모두 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가 아버지의 사랑은 물론 전 재산을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된다. 물론 코델리어보다 더 비참한 사람은 딸의 솔직함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리어왕 자신이다. 사탕발림으로 사랑을 고백한 두 딸 덕분에 그는 막판에 두 눈을 찌르고 벌판에 서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헛소리를 지껄이게 된 것 아닌가.  

최근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역시 박혜진의 글 속에서 '영웅 서사에서 빌런 서사로 가는' 이야기의 핵심이 정리된다. 책을 읽어본 사람들은 룰루 밀러가 추앙했던 데이비즈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황당한 결론을 가져오는지 알 것이다. 박혜진 작가는 이런 충격적인 서사 안에서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로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진리를 발견한다.


난다의 김민정 대표가 펴낸 책이라는 것만으로도 반가워하며 책장을 열었는데 저자의 깔끔하고 단호한 문장에 다시 한번 반했다. 박혜진 작가는  유튜브 '민음사TV'만 봐도 얼마나 말을 잘하고 문학 전반에 걸쳐 척척박사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나는 얼마 전 '세계문학전집 월드컵'이라는 제목의 방송을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여기서는 '호밀밭의 파수꾼' 선수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선수를 물리치고 막 그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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