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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20. 2023

미워할 수 없는 무라카미 하루키

레이먼드 카버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새벽에 우연히 눈이 떠져 마루로 나와 무라카미 하루키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에 대해 쓴 글을 읽고 있다. 하루키에 따르면 카버는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가 독자와 비평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오랫동안 그의 인생을 망쳐온 알코올 의존증을 극복했으며, 전처와도 이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전에 비하면 작품의 질과 작풍이 안정되었다는 것인데 하루키는 이를 야구 선수의 타격 폼으로 비유하고 있다.


"그에 따라 작품도 깊이와 설득력이 커지게 되었다. 야구에서 타자를 예로 들면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치는 것이 아니라, 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배트를 휘두르는 경지에 이르른 것이다."


어느 순간 하루키가 시시해 보이다가도 이런 글을 읽으면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의 문장이 신중하고 견고해진 것을 야구 선수의 타격 폼으로 비유하다니. 너무 쪼다 같으면서도 멋있지 않나.


한편 단편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는 심장 전문의 멜과 그의 두 번째 아내 테리, 그리고 나와 로라 부부가 멜의 주방에서 낮술을 마시며 '사랑에 대해 얘기하자'면서 자살한 테리의 전남편 얘기,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왔던 노부부 등에 대해 두서없이 떠드는 소설이다. 테리는 멜의 전처인 머조리가 하루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녀가 아이들은 물론 남자 친구까지 데리고 사는 바람에 멜이 파산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멜은 그녀에게 벌 알레르기가 있다면서 "그녀가 재혼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다하다 안 되면, 빌어먹을 놈의 벌한테 쏘여 죽어 버리라고 기도를 할 거야."라는 막말을 한다. 소설은 멜이 잔을 뒤집어 놓고 술이 떨어졌다고 의뭉을 떠는 순간 끝나는데, 주변이 어두워지고 되게 이상하게 끝난다. 궁금하신 분은 도서관에 가서 이 소설집을 빌려 읽으시기 바란다.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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