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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an 22. 2023

도서관 없애지 마라

윤석열 정부와 도서관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나 변곡점이 되는 지점을 골라 차분하게 글로 써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했던 게 '손바닥 자서전 쓰기'의 취지였다. 처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워크숍에서 글쓰기 강의까지 하는 기회를 얻었을 때만 해도 과연 몇 분이나 이걸 할 수 있을까, 조금은 회의적인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스무 명의 워크숍 참가자 중 열여섯 명이나 자서전을 써서 제출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건 저마다의 가슴속에 반드시 반추하고 쏟아내야 할 '사건'들이 들어 있다는 뜻이니까.


사람들이 자서전에서 가장 많이 쓰는 건 가족 얘기였다. 함께 자랄 때 부모가 불공평하게 쏟았던 자식 사랑이 형제자매들의 인생을 어떻게 흔들었는지에 대해 썼고, 뒤늦게 새로운 사랑을 발견해 가정을 붕괴시킬 뻔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쓴 사람도 있었다. 어렸을 때 가출했던 경험을 쓴 이도 있었고 자신의 결혼 실패기를 쓴 사람은 둘이나 되었다. 그런데 이런 극적인 이야기들 사이에 한가하게 도서관에 다니는 나날에 대한 쓴 글이 유독 튀었다.      

그는 비교적 젊었을 때 시집을 와 평생 시어머니를 모셨다고 한다. 시집살이는 고됐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 키우고 집안일하느라 자신의 삶을 따로 누릴 기회는 없었다. 시어머니를 여의고 나서야 비로소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는데 엉뚱하게도 그가 꽂힌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우연히 지역사회의 작은 도서관에 갔던 그는 책을 읽는 행위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에 들어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은 지식을 쌓거나 마음의 평화를 얻는 도구만이 아니었다. 책은 자신이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시간에 의미를 더해주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조용한 교류는 자신이 소중한 단독자임과 동시에 우주 만물에 연결되어 있는 심층적 존재라는 성찰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그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각종 강연, 행사에 참여할 생각만으로도 행복감이 몰려온다고 고백했다.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도서관과 비슷할 것이다’라고 했던 보르헤스 말에 가장 잘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소설가 김진명의 에세이집 『때로는 행복 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를 들춰보면 그가 젊은 시절 도서관 문이 열리는 시간부터 밤늦게까지 열람실에 앉아 책을 읽던 사연이 등장한다. 도서관에서 고시공부를 하던 친구들은 하루 종일 문학이나 사회과학, 철학, 물리학 같은 이상한 책들만 찾아 닥치는 대로 읽으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김진명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김진명은 수천 년 인류가 쌓아 온 역사와 사상의 결과물을 외면한 채 좁은 고시 공부에만 매달리는 그들을 측은한 인생이라 여겼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둘 다 성공이었다. 김진명은 슈퍼 베스트셀러를 쓰는 소설가가 되었고 같이 도서관에 앉아 고시공부를 하던 사람들은 판검사가 되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무궁무진한 호기심으로 책을 찾아 읽고 글을 쓰던 사람과 법조문을 달달 외워 시험을 치고 고시를 패스한 사람의 인생은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대통령부터 국무위원까지 검사 출신으로 무장한 윤석열정부는 자기들처럼 엘리트 부자들이 더 잘 사는 일 말고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입만 열면 경제와 자유를 외치지만 정작 서민들의 자유와 경제엔 속수무책이다. 겨울에 13~4만 원 정도 나오던 우리 집 가스비가 지난달 23만 6천 원으로 오른 걸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더 심각한 건 그들이 도서관을 없애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불도저를 직접 몰고 가서 도서관을 밀어버리지 않는다. 그보다 간단한 방법이 있다. 지원을 끊는 것이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작은도서관을 대상으로 한해 7억~8억 원씩 지원해 왔는데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2021년부터 계속 지원비를 줄이다가 올해엔 돌연 ‘전액 삭감’을 선언했다. 서울시는(오세훈 시장은) 지난해 12월 16일 “2023년 예산 미편성으로 해당 사업이 종료됨을 사전 안내드린다”는 내용의 공문을 각 구 도서관 담당 부서에 전달했다. 미안하지만 다시는 보지 말자는 얘기다.

이에 나는 정부와 서울시에게 읍소한다. 너무 많이 오른 가스비와 전기세는 어떡하든 노력해서 내볼 테니 제발 도서관은 없애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도서관이 시험공부하는 곳이라는 인식도 좀 바꾸길 바란다. 어린이들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노는 시간을 통해 바람직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어른들은 도서관에 가서 잃어버린 꿈을 발견하거나 자신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돌아보는 기회를 가진다. 그건 술집에서 하는 푸념이나 스트레스 해소 발언과는 차원이 다른 소중한 시간이다. 이젠 술집에 가는 대신 마을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싶다. 그러니 도서관에 갈 지원금을 빼앗아 다른 곳에 쓰는 일을 멈추기 바란다. 이게 그렇게 큰 바람도 아니지 않은가. 


(*지원 중단은 없었던 일로 되었다는 유창선 박사님의 지적에 기사를 찾아보니 엊그제인 1월 20일에 지원 취소를 재검토하고 계속 작은도서관을 지원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기사가 났네요. 오세훈 시장이 관계자를 질책했다는 해명도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좀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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