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할리우드, 나쁜 할리우드, 이상한 할리우드

데이미언 셔젤의 영화《바빌론》

by 편성준

《라라랜드》의 데이미언 셔젤은 야심이 빛나는 이야기꾼이다. 할리우드의 초창기 이야기를 다룬 그의 새 영화 《바빌론》은 술과 음악, 마약과 섹스가 난무하는 첫 파티 장면도 충격적이지만 그보다는 마고 로비가 술집 씬에서 춤을 추다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관객을 더 끌어들인다. 그녀는 컷이 반복될 때마다 감독의 요구에 따라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의 양까지 조절하는 연기를 펼치는데 촬영을 다 마친 감독이 감탄하며 어떻게 그렇게 눈물을 마음대로 흘릴 수 있느냐고 묻자 "고향 생각을 했어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한다. 이 장면과 겹치는 게 바로 해가 지기 전 브래드 핏의 에픽 무비를 찍을 카메라를 가지러 자동차를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디에고 칼바의 모습이다. 마고 로비와 디에고 칼바 장면의 이 숨 가쁜 교차 편집은 데이미언 셔젤이 얼마나 영화 문법에 능숙한지 알려준다.


나는 마고 로비가 기숙사에 도착해 트렁크를 탕 내려놓고 "안녕, 대학!"이라 외친 뒤 학장과 통화하는 장면을 여러 테이크로 찍을 때 문득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하마구치 류스케가 배우들로 하여금 안톤 체호프의 극본을 집요하게 연습시키던 장면을 떠올렸다. 자신이 있는 감독들은 무조건 스피디하게만 찍지 않는다. 필요한 부분은 관객의 눈치 보지 않고 아주 침착하게 반복적으로 찍을 수 있는 배짱. 이게 새로운 거장을 만드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브래드 핏도 멋지고 토비 맥과이어도 좋지만 역시 이 영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마고 로비의 영화다. 스타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그녀와 그런 그를 지켜주는 디에고 칼바의 인생곡선을 따라가다 보면 좋은 할리우드, 나쁜 할리우드, 이상한 할리우드가 189분간 다 펼쳐지는 기분이다. 맨 마지막엔 《시네마 천국》에 필적할 만한 감독의 보너스 편집 장면도 나온다. 이전 영화처럼 음악도 끝내준다. 나는 친구가 오늘 이 영화 꼭 보라며 예약까지 하고 메신저로 티켓을 보내주는 바람에 개봉 첫날 볼 수 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 그 친구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이런 영화 보라고 아직도 극장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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