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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Feb 02. 2023

'거절하는 삶을 살아보자'는 슬기로운 제안

소금책 : 김호의  『나는 이제 싫다고 말하기로 했다』 편

 

"하루 종일 일을 하고 피곤해 죽겠는데 친구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온다. 잠깐 산책을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힘들지만 친한 친구의 부탁이나 거절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옷을 챙겨 입고 나가면서 생각한다. 나는 친구에게 착한 사람일까, 쉬운 사람일까?"


그제 저희 집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실제로 어떤 분이 말씀해 주신 내용입니다.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착한 아이 신드롬'이라는 게 있습니다. 조직 커뮤니케이션 코치이자 더랩에이치 대표이기도 한 김호 작가는 여렸을 때부터 '심부름 잘하는 착한 아이'로 컸고 어른이 되어서도 "좋아."라거나 "괜찮아."를 외치는 거짓말쟁이로 살아왔다고 합니다. 착한 사람이라는 환상을 스스로 심어가며  셀프 착취를 하고 있었던 거죠. 1월의 마지막날인 화요일 소금책은 김호 작가를 모시고 '거절'에 대해 강의도 듣고 이야기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원래 금요일에 열려서 소금책인데 그저께는 화요일이었죠. 김호 작가의 스케줄이 이날밖에 안 된다고 해서 처음으로 화요일에 열리는 행사가 되었습니다. 그만큼 바쁜 분인데 저희 소금책에 와 주신 게 고마운 일이죠. 더구나 어제는 부인인 김은령 부사장(전 럭셔리 편집장)도 함께 왕림해 주셔서 더 뜻깊은 자리였고요(김은령 부사장이 아내 윤혜자의 절친입니다).


공지한 지 5분 만에 마감된 이번 북토크는 협소한 장소 때문에 딱 열두 분만 모셨는데 두 분이 직전에 불참 통보를 하셔서 결국 열 분이 오셨습니다. 늘 오시는 임선정 선생, 성화숙 선생, 김남희 선생(필명 김보리 작가)이 오셨고 여은영 선생도 드디어 성북동 소행성을 방문하셨습니다. 그 밖에도 김호 작가와 예전에 비즈니스로 만났거나 독서클럽으로 인연을 맺은 분들이 오셨습니다(이신숙 선생 같은 경우엔 제가 쓰는 '공처가의 캘리' 덕분에 저희 커플을 알게 되었다고 하셔서 행사 끝난 후 제가 써서 무심코 창문에 붙여 놓았던 최승자 시를 한 장 선물로 드리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제 싫다고 말하기로 했다』같은 책은 도대체 어떤 이야기로 시작을 할까 궁금해져서 다시 유심히 책장을 넘겨 보았더니 허먼 멜빌의 중편 『필경사 바틀비』의 그 유명한 문장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I would preper not to )."였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아이스 브레이킹 삼아 김호 선생을 잠깐 소개했습니다. 이어 거절을 잘하지 못해 친하던 친구와 의절까지 했던 저의 경험담을 이야기하고 곧이어 북토크에 오신 분들의 간단한 자기소개를 들었습니다. 처음엔 쑥스러워하다가 결국은 너무나 유창하게 자기소개 및 독후감, 거절에 대한 생각들을 빠르게 피력하셨습니다. 다들 거절에 대한 고민과 회한을 한 가지씩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호 작가가 20분 정도 미니 강연을 했습니다. 맨 처음 부탁은 지금 옆 사람에게 300만 원만 꿔달라고 부탁을  해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거절하는 실험도 해보았습니다. 웃기긴 했지만 다들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김호 작가가 물었죠. "거절하면서 거절하는 이유를 댄 사람 손 들어 보세요." 아, 이럴 수가. 거의 모든 분들이 "지금 통장에 돈이 없어. 미안해." 같은 변명을 했다는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김호 작가는 거절하는 데 이유가 필요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저는 예전에 이 얘기를 아내와 함께 들은 바 있는데도 여전히 신선하고 충격적이기도 했습니다. 김호 작가는 '중요한 건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남에게 친절하느라고 정작 자기 자신에겐 불친절한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 했습니다. 정말 건강한 관계의 기본은 교환인데 말이죠.


김호 작가가 자신의 경험담을 필두로 구체적인 항목들을 열거하자 그동안 거절 때문에 생겼던 크고 작은 상처 커밍아웃이 신앙 고백처럼 쇄도했습니다. 하지만 한숨과 눈물로 시작한 이야기들은 어느덧 공감과 위로의 미소로 변했습니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다들 한 가지씩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책 말미에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가 예술학교 졸업식에 가서 했던 연설 내용을 소개한 내용이 너무 재미있으니 꼭 읽어 보시고 나중에 유튜브로도 꼭 찾아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거절력'과 '부탁력'이라는 오늘의 핵심 메시지도 다시 한번 강조를 했고요.

제가 "김호 작가가 9시 이후의 강연을 거절하셨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마감 시간을 재차 알렸더니 다들 웃으며 동의하셨습니다. 깔끔하게 9시 5분에 모든 행사가 끝났습니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신 뒤 김호·김은령 부부는 '수십 수백 명 앞에서 강연하는 것보다 이렇게 열 명 정도 소수정예만  모이니 집중도 잘 되고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며 웃었습니다.  소금책을 하는 저희는 이런 순간에 가장 큰 보람을 느끼죠.


이날은 2023년 첫 소금책이자 행사를 잠깐 쉬겠다는 공지 사항을  알리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두 달 정도 쉬며 저희를 돌아보고 4월에 다시 소금책을 열 생각입니다. 참, 오는 4월 14일엔 을지로3가에 있는 느티책방에서 '소행성 글쓰기 워크숍' 출신 다섯 명의 저자를 한꺼번에 모시는 어벤저스 북토크를 열기로 했습니다. 느티책방은 제가 '공대생도 감성작가로 바꿔주는 글쓰기' 강연 첫날을 여는 장소이기도 하죠. 많은 성원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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