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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Feb 03. 2023

여성이 연기하는 데미안과 싱클레어

뮤지컬 《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기에 읽은 인생책으로 꼽는다. 라디오 방송에 엽서를 보내던 시절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구절은 DJ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국에 울려 퍼졌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지금 왜 다시 뮤지컬로 보아야 하는가.


극을 쓰고 연출한 오세혁 작가는 책을 다시 읽다가 마지막 대목에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전쟁터에 끌려온 젊은 병사들이 모두 똑같은 얼굴로 전투를 벌이다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얼굴로 돌아온다는 구절이었다. 나는 신문 인터뷰 기사에서 이 구절을 읽고 무릎을 쳤다. 사람 안에는 여러 개의 얼굴이 있지만 진짜 자기 얼굴로만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 아닌가. 오세혁 작가는 헤세가 얘기하는 '진정한 자아'의 막연함을 얼굴이라는 구체적 실체로 해석하려 한 것 같다.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얼굴이 회차마다 남자 또는 여자로 성별이 자유롭게 바뀌는 것도 그런 '자아의 이중성'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이 뮤지컬을 두 번 보았는데 남자 배우 버전보다 여자 배우들 편이 훨씬 좋았다. 아무래도 소년을 연기하기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낫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데미안 역을 맡은 홍나현 배우의 연기가 훌륭했기 때문일 것이다. 싱클레어 역의 임찬민 배우도 정말 잘했다. 헤르만 헤세나 톨스토이 같은 작가들이 쓴 고전의 가치는 한 번 읽었더라도 나중에 어떤 시각이나 생각으로 읽느냐에 따라 늘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오세혁 작가는 '진정한 자아 찾기'라는 관념에 음악을 입혀 2023년의 젊은이들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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