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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Feb 11. 2023

영원히 사는 열네 명의 철학자들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이 책은 워낙 유명한 저저 에릭 와이너의 저작이기도 하지만 소설가 김영하가 자신의 북클럽에서 읽을 책으로 선정하는 바람에 판매에 날개를 달았다. 소설 말고는 두꺼운 책을 좀 무서워하는 나는 괜히 버티다가 오늘 아침에야 이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뭐 아직도 안 읽은 사람이 수두룩할 테니 상관없다).


여기엔 마르쿠스 아우레레리우스부터 몽테뉴까지 열네 명의 철학자들이 등장한다. 에릭 와이너가 '들어가는 말(철학 열차가 출발하는 장)'에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 출연하는 철학자 열네 명에 대해 설명하는 게 재미있다. 그는 말한다. 구글에서 '철학자'를 검색하면 수백, 수천 명이 나오는데 그중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혜로운 열네 명만 엄선해 책에 실었다고. 그들의 삶은 기원전 5세기부터 20세기까지 방대한 시공간대를 오가고 이미 열네 명 모두 죽었지만 다들 알다시피 훌륭한 철학자들은 죽지 않고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고.

'훌륭한 ***은 죽지 않고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는 구절에서 시선이 멈췄다. 그렇다. 우리는 죽지 않고 다른 이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고 싶어서 글을 쓰고 영화나 연극을 만들고 사업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의 가슴속에 들어가 죽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시시하게 친인척의 가슴속으로 기어들어가고 싶진 않다. 그냥 깨끗이 죽을까. 아냐 아냐. 그래도 시비를 걸어봐야지.


아, 그리고 에릭 와이너는 은유, 즉 메타포를 참 잘 쓴다. 자신은 기차 여행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그 이유가 기차와 철학이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밝히는데 그러면서 은근슬쩍 제목에 급행열차(익스프레스)를 집어넣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지식이 아니라 지혜라고 하면서는 "지식은 토마토가 과일임을 아는 것이다. 지혜는 과일 샐러드에 토마토를 넣지 않는 것이다."라고 한다. 말장난에도 능하다. 자기가 고른 철학자들은 모두 실용적인 철학자였다고 하면서 "그들의 관심은 삶의 의미가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있었다."라고 말한다. 언어유희 같지만 가만히 곱씹으면 결국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오랜 버릇처럼 책을 읽기 전 아무 데나 펴서 읽어보니 행복은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고 하며 "행복은 붙잡으려고 애쓸수록 우리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라고 말한다. 역시 구라가 세다. 일단 책을 읽자. 책 읽기 전에 수다가 길어졌다. 반가워요. 어서 오세요. 영원히 사는 열네 명의 철학자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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