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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12. 2023

김은숙의 《더 글로리》와 정세랑의 「7교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라는 물음

어제 《더 글로리》 후반부를 다 보았다. 역시 김은숙은 김은숙이었다. 이게 끝인가 싶으면 또 복선이 나오고 이제 쟤가 자살하고 끝나나 싶으면 또 돌아서서 복수를 계획하고....... 마지막까지 복선과 아이디어가 끝없이 흘러나왔다. 드라마를 보는 도중 아내가 스마트폰으로 새삼 그의 필모그래피를 꺼내 보며 감탄했다. "김은숙 작가는 실패작이 없네."  


캐릭터 배분을 위해 약간의 스테레오 타입을 피할 순 없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박연진과 내연 관계였던 전재준이 자신의 유전적 아이에 그렇게 집착하는 게 좀 웃겼다. 유전자 보전이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전쟁 중 성폭력이나 강간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도 죽기 전에 자손을 남겨야 한다는 인류의 오래된 무의식 때문이라는 헛소리도 있긴 하지만.


새벽에 정세랑의 「7교시」라는 초단편을 읽었다. 여섯 번의 대멸종을 통해 인류의 3분의 1을 잃은 200년 후쯤의 지구 이야기인데 주인공 아라의 양육자인 태이는 자신이 태이의 유전자를 통해 태어났느냐는 딸의 질문에 대답을 흐린다. 그는 딸에게 부모라는 호칭도 거부하고 이름을 불러 달라고 하는 사람이다. 이 시대는 인간 특유의 공격성이나 이기심을 가진 자신의 유전자보다는 종 다양성에 기여한, 유난히 이타적인 사람들의 '익명의 유전자'를 선택해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사람이 많다는 설정이다. 아니다 다를까, 책 뒤편 작가의 말에서 정세랑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우리와 닮은 존재가 아닌 닮지 않은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발가락이 닮았다고 자조하며 낄낄대던 김동인·염상섭 시대로부터 멀리 오긴 했다. 물론 나는 정세랑을 지지한다. 나를 닮은 아이는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리뷰가 이상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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