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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12. 2023

《더 글로리》가 우리에게 던져준 희망

드라마 《더 글로리》리뷰


김은숙 작가가 쓴 화제의 드라마 《더 글로리》를 다 보고 '아무리 치밀해도 복수의 끝은 역시 허망하더라'라는 감상을 남긴 분이 있었다. 나는 그 감상평을 읽고 그런 걸 잘 알면서도 우리는 왜 매번 복수극에 매혹되는 걸까 반문해 보고 싶었다. 물론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무협물이나 서부극에는 그런 허망함이 있다. 주인공을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복수의 집념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개인적인 복수의 경우다. '더 글로리'처럼 대의명분이 명확한 경우엔 감정적인 허망함 대신 응징에 대한 쾌감이 남아야 한다. 그리고 김은숙 작가가 그걸 해냈다.


잘 만들기도 했지만 이 드라마가 더 인기를 끈 이유는 역설적으로 현실에서 그런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세상이 다 그런 거지 뭐'라는 체념의 언어를 어른들로부터 배우고 익히며 살아왔다. 최근 시끄러웠던 정치권 뉴스나 학교폭력 스캔들만 봐도 그렇다.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는 얘기가 반복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해자들이 뉘우치거나 벌을 받는 장면도 좀처럼 볼 수 없다. "용서도 힘이 있어야 하는 거야."라는 전설의 드라마  《모래시계》의 대사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었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를 보고 '당신 땅에서는 이런 식의 복수가 가능한 모양이지?'라고 다른 문명권의 누군가가 묻는다면 당장은 쓰게 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픽션은 현실의 반영이고 SF에서 보았던 미래도 끝내 현실이 된다. 당장은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하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우리는 3.1 운동을 일으켰고 민주화도 이루었으며 대통령 탄핵에 성공했다. 미리 포기했더라면 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문동은과 그의 친구들이 조심스럽고도 끈질기게 벌이는 복수의 연대감은 통쾌함을 넘어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된다. 구한말을 다룬 《미스터 션샤인》도 민간 의병대를 찍은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드라마 《더 글로리》가 다른 콘텐츠와 차별화되는 지점 역시 우리들 마음속에 있는 정의감을 끌어내는 이런 파급력 때문이 아닐까. 김은숙 작가를 존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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