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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15. 2023

담배 끊는 데 이백만 원 정도 들었습니다

살다 보면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온다  


저는 담배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배운 담배를 줄기차게 매일 한 갑 반 정도 피웠으니까요. 그해 가을 제 방에 있다가 마루로 나와 어머니에게 "500원만 주세요."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오백 원은 뭐 하려고?"라고 물으셨습니다. "담배가 너무 피우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하자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게 천 원짜리 지폐를 내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송한 일이었죠.

대학생이 된 저는 술, 담배, 외박을 인생의 3대 지표로 삼고 살았습니다. 처음엔 금방 취하고 자주 토했지만 차츰 늘어 소주 두 병 정도는 혼자 거뜬히 마시게 되었고 하루 반 갑이던 담배도 한 갑을 넘어 '갑 반'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생활은 스트레스와 마감을 끼고 사는 직업이라  담배가 손에서 떠날 날이 없었습니다. 중독이 심각했습니다. 담배를 피우면서도 책상 위 담뱃갑을 바라보며 다음 담배를 피울 생각을 하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생활을 하며 개포동 4층짜리 건물 원룸에서 혼자 살 때 초라해질 대로 초라해진 저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하다가 '금연'을 떠올랐습니다. 저는 여섯 개의 재떨이가 널려 있는 좁디좁은 집에서 금연을 시작했습니다. 냉장고의 냉동실엔 던힐 미디엄 한 보루가 그대로 보관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친구들이 오면 담배를 피울 수 있게  여섯 개의 재떨이는 치우지 않았습니다. 담배를 끊은 건 저 하나였으니까요. 금연패치를 붙이는 대신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일어나 무작정 걸어 다녔습니다. 하루는 자다가 깼더니 새벽 네 시더군요. 저는 점퍼를 걸치고 밖으로 나와 영동2교 근처 쌍둥이빌딩 부근을 한 시간 넘게 걷다가 다시 들어왔습니다. 고독한 시간이었습니다.


금단 현상이 심각했습니다. 손이 덜덜 떨려서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경쟁 PT 아이데이션을 앞두고 계속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금연 이후 이틀 동안 아무런 아이디어도 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일을 의뢰한 옛 작장 동료 이문선 실장을 찾아가 빌었습니다. "문선아, 내가 담배를 끊었는데 지금 금단 현상이 심해서 아무것도 못하겠다. 정말 미안한데 나 이 일에서 좀 빼 줘. 그동안 한 일 값은 안 받을게." 이 실장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직업윤리 상 말도 안 되는 얘기였습니다. 지금도 문선에게는 미안한 마음입니다. 사무실을 나서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프로젝트 끝나면 카피료로 이백 만 원 정도 받기로 했으니까 담배 끊는 데 이백만 원 드는 거구나. 돈도 아깝고 친구에게도 정말 미안했지만 그렇다고 흡연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담배를 끊고 일 년 후쯤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저와 함께 빵을 먹던 그녀는 '오빠 담배 끊은 지 일 주년 되었다니 기념으로 내가 스케일링을 선물하겠다'라고 하며 신사동에 있는 치과병원으로 저를 데려갔습니다. 개그맨 남희석 씨 부인이 하던 치과였습니다. 그게 2011년도였습니다. 담배를 끊어서 그 친구와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금연을 한 것은 백 번 잘한 일입니다. 이백만 원 정도 들여 이억 원 이상의 효과를 냈으니까요. 스티븐 킹 단편소설 중 「금연 주식회사」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옵니다. 저에게는 금연이 그 첫 번째였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를 시작한 일이었죠. 그 얘기는 다음 기회에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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