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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25. 2023

미워하지 말자

새벽에 성북동 큰길 나갔다가 잠깐 한 생각

우리 동네엔 아내와 내가 미워하는 식당이 하나 있다. 아니, 사실은 미워한다기보다는 못마땅해하는 쪽에 가깝다. 세븐일레븐 뒤에 있는 함바집이다. 원래는 전철역 근처에 있었는데 얼마 전 이쪽으로 이사를 왔다. 불친절하고 조미료를 많이 쓰고 음식이 거친 느낌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싫은 건 간판이 너무 요란하고 조악하다는 것이다. 커다란 식당 이름에 노란색 빨간색이 춤을 춘다. 엄청 촌스럽다. 골목 입구에 있는 으뜸부동산 간판과 함께 '동네 간판계의 2대 악'이라 할 만하다.

그러다 오늘 아침에 잠깐 잠이나 깨려고 밖으로 나갔다가 그 식당 앞을 지나쳤다. 식당 안에서는 아주머니들이 분주하게 아침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편의점 쪽으로는 이 식당에서 내놓은 입간판이 서 있었다. '아침식사'라는 간판은 대로 쪽에 서 있었고 '아침식사 됩니다'는 골목 입구에 세워 놓았다. 그 간판들을 연결한 전기릴선을 보는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직 날도 밝지 않은 이 시간부터 움직이는 아주머니들의 고단함과 의지가 한꺼번에 느껴져서였다. 가끔 새벽에 밖으로 나가 걷거나 전철을 타면 반성 모드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오늘은 아주 결정판이다.

그래, 아줌마들이 불친절하긴 하다. 간판도 너무 요란하고. 작년에 한 아주머니는 빙글빙글 웃으며 내가 시킨 메뉴만 안 된다고 약을 올리기도 했지. 그다음부터 이 식당엔 발길을 끊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내가 이 식당을 미워하기까지 할 건 없잖아. 그냥 안 가면 되지. 잘난 척은 하지 말자...... 뭐 이런 생각을 몇 초간 하다가 출근하시는 해동꽃농원 사장님을 보고 큰 소리로 인사를 한 뒤 집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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