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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r 29. 2023

결핍이 주는 힘

존 버거의 『제7의 인간』

존 버거의 『제7의 인간』을 읽다가 생각했다. 그가 이 책에서 주는 통찰은 컬러의 결핍이다. 다른 저작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이 책에서도 흑백사진만 다룬다. 장 모로가 찍은 일련의 사진들인 까닭도 있겠지만(존 버거는 몇 년간의 세월을 두고 촬영한 사진들은 그로써는 도저히 필적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해준다고 하고 있다. 연속된 사진작품들은 모두 하나하나의 발언이라 찬하기도 한다) 흑백사진이 계속되면 이상하게 사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컬러사진보다 더 상상력을 동원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핍이 주는 힘이다. 나는 임권택 감독의 《깃발 없는 기수》를 볼 때도 대학생들이 술집에서 젓가락으로 집어먹는 안주가 무엇인지 너무나 궁금해 한참을 쳐다보았다. 컬러였으면 무심히 넘기거나 키치적으로 느꼈을 장면도 흑백의 감흥은 시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제7의 인간』은 존 버거가 기록사진들을 가지고 쓴 글들이다. 어쩌면 그림을 보고 15분 글쓰기를 시키는 임지영 선생의 작업과도 닮았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니 차미례 선생이 1991년 10월에 번역을 해서 펴낸 책이다. 존 버거는 '독자에게 드리는 글'에서 이민노동자들의 삶과 물리적 환경을 지켜보는 것은 지금 이 순간 세계의 정치적 현실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하는 일이라 쓰고 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부분에서 전체를 보는 현자의 시선이다. 독일에서는(그리고 영국에서는) 육체노동자 일곱 명 중 한 명은 이민노동자였다(1973~4년에). 그래서 존 버거는 아틸라 요제프(Attila Jozsef)의 시를 인용해 '제7의 인간'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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