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Apr 01. 2023

왼손이 알려준 진짜 달콤한 인생

고영주의 『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지난 3월 24일 금요일. CGV용산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장기자랑》을 본 날 아내와 함께 카카오봄에 갔었죠. 아내는 세상살이가 쓸쓸해지거나 기운이 없을 때면 버스를 타고 삼각지역에 있는 카카오봄까지 가서  융드립 커피와 벨기에식 와플을 먹고 나면 좀 힘이 난다고 말하곤 합니다. 물론 그날은 세상살이가 팍팍해서라기보다는 오랜만에 용산에 간 김에 가게에 들른 것이지만 말입니다. 가게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고 와플도 먹으며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침 주방에서 나온 고영주 사장님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요즘은 보통 사장을 대표라고 부르지만 저는 왠지 고영주 사장은 대표보다 사장이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 이유는 조금 있다가 말씀드릴게요).


아내가 카운터에 있는 책 『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를 사라고 해서 신용카드를 꺼내 책값을 치르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 들춰보고 있는데 고 사장님이 간장캬라멜을 들고 나오셨어요. 한정판으로 만든 건데 한 번 맛을 보라면서 말이죠. 아내와 고 사장님이 의자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저는 방금 산 책을 들여다봤습니다. 놀라운 책이더군요. 제목엔 달콤한 인생이 들어 있는데 부제는 '아픈 나와 마주 보며 왼손으로 쓴 일기'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비로소 고 사장님의 오른손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마 아파서 왼손으로 글씨를 쓴다고 하더니 그날은 또 다른 일로 다쳐서 붕대까지 감고 있더군요. 저는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왼손으로 쓴 일기라니. 제목이 참 좋다,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몇 페이지만 들춰 봤지만 결국 저는 집으로 와서 다른 일을 하다가도 자꾸 이 책을 펼쳐서 읽게 되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왼손으로 쓴 글씨를 읽는 맛이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책은 '결국 오른손 엄지손가락은 안쪽으로 살짝 굽은 채 굳어버렸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어쩌다 몸이 저 지경이 되었을까 생각하며 책을 읽어나가다가 "선생님은 언제 쉬세요?"라는 질문에 "아플 때요."라고 대답하고는 스스로 놀라는 장면과 마주쳤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쉴 줄도 모르는 모습은 비단 고영주 사장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영주 사장은 반성합니다. 생각하는 손을 갖고 싶어서 열심히 일했더니 아픈 손이 되었다고. 중간중간 손이 경고를 했는데 무시했더니 결국 이런 일이 생겼다고.


쇼콜라티에에게 손이 아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주로 서서 일을 하는 쇼콜라티에는 목부터 다리까지 망가지기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일 걱정은 손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겠죠. 초콜릿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인류가 엄지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어서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당장 글을 쓰는 저만 해도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을 때의 공포감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손가락이 미친 듯이 아파 노트북 자판을 치지 못한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무서워서 정형외과로 달려가보니 손가락에 염증이 생겨 그렇다고 하더군요. 주사를 맞고 약을 먹는 등 호들갑을 떤 지 며칠이 지나서야 제 손가락은 예전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예전 손가락으로 돌아가지 못한 고 대표는 왼손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왼손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 얼마나 힘이 들까요. 힘이 들면 하다가 멈추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고 대표도 그는 게 두려워서인지 스스로에게 옵션을 겁니다. 매일 글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멈출 시엔 어딘가에 백만 원을 기부하겠다고. 그러면서 왼손으로 쓰니 처음 글씨를 배우던 아이처럼 생각도 표현도 단순해지는 것 같다며 좋아합니다. 정말 못 말립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며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렸습니다. 하루키가 처음 소설을 쓸 때 이야기가 생각나서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특히 미국 페이퍼백 소설을 즐겨 읽었던 하루키는 어느 날 야구장에 가서 야쿠르트 스왈로우테일즈의 선수가 2루타를 치는 순간 뜬금없이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죠.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와 글 써 보니 기존 일본 작가들의 글과 다른 게 하나도 없더라는 겁니다.  그는 고민했습니다. 어떡하든 익숙한 방법에서 벗어나고 싶어 그가 선택한 건 영어로 소설 쓰기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 소설을 꾸준히 읽긴 했고 대학교육까지 받은 인텔리지만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은 또 다른 문제 아니겠습니까. 하루키는 어린애가 된 기분으로 주어와 동사만으로 이루어진 아주 간단한 문장을 구사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쓴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군조신인상을 탔습니다. 쉽게 쓰지 못하기에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쓰게 되는 게 고영주 사장의 일기와 닮아 있죠.


아무튼 이 책을 읽는 건 특별한 경험어었습니다. 무릇 계기가 있었다면 깨닫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고영주 사장이 손가락 아파 왼손으로 일기를 쓰면서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요. 물론 책엔 이것 말고도 많은 반성과 깨달음이 있지만 제가 가장 감탄한 것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글입니다. 아주 쉬워요. 그러나 사장이 하기엔 힘든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제가 고영주를 굳이 대표가 아니라 사장이라 부르고 싶은 거고요. 이 독후감은 이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낼까 해요. 왜냐하면 독후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독서한 후에 남는 감정'인데 저에게는 이 글이 제일 세게 머리를 쳤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기술은 도제식으로 배운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박봉을 견딘다.

가족 같은 회사

부모나 스승 같은 사장

손님은 왕이다


<지금은 맞고 언젠가는...>


기술은 돈 내고 배우고 일하며 익힌다

일하면 누구나 최저임을 받아야 한다

일터 같은 회사

계약조건 잘 지키는 사장

손님은 고마운 이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에쥬스처럼, 아침에 기형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