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엄마걱정」
시는 잘 모르지만, 기형도가 엄마를 얼마나 생각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라는 구절에서는 귀엽고도 슬픈 소년의 절망이 너무나 정확하게 느껴진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 시를 발견하고는 마루 책장에 가서 기형도의 시집을 꺼냈다. 황동규 황지우 정현종 시집 옆에 서 있었다. '여공들의 얼굴은 희고 아름다우며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라는 구절이 나오는 데뷔작 「안개」, 내가 생애 최초로 암송했던 시 「질투는 나의 힘」도 반갑다. 서점에서 우연히 샀던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라는 앤솔로지 시집의 제목이 바로 이 작품의 한 구절이었음은 시집을 구입한 지 한참 지난 후에야 알았다. 그러나 상관없다. 아직도 기형도를 모르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시집 제목을 시에서 뽑지 않고 본문에서 따오기 시작한 것이.
아, 오늘 시집을 다시 펼쳐 보고 「엄마걱정」이라는 시가 이 시집의 맨 끝에 실렸음을 알았다는 것도 말해야겠다. 책 맨 뒤엔 김현 선생이 쓴 해설이 달려 있다. 종로2가 파고다극장에 앉아 사망한 기형도의 부고 소식을 알리며 황망해하던 선생의 짤막한 신문 글도 생각이 난다. 아, 나 이러면 안 되는데. 나 급하게 써야 할 글이 있는데.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