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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07. 2023

안톤 체호프가 아니라 안똔 체홉이다

연극 《아마데우스》와 《시라노》 동시 리뷰

안톤 체호프가 아니라 안똔 체홉이다 - 연극 《아마데우스》와 《시라노》 동시 리뷰

보통 표기하는 안톤 체호프가 아니었다. '안똔체홉극장'이었다. 극장 이름부터 뭔가 고집과 자부심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제와 어제 성대 앞에 있는 안똔체홉극장에 가서 《아마데우스》와 《시라노》를 연속으로 보았다. 두 작품 모두 세 시간에 육박하는 작품이고 개인적으로는 이틀 모두 오전에 강의가 있는 날이어서 힘은 들었지만 연극이 재밌어서 충분히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사실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정통 희비극을 두 편이나 볼 수 있다는 것부터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극장은 너무 작고 평면적이었다. 조명도 밝아서 깊이감이 없었다. 당연히 처음엔 "엥~ 여기서 아마데우스를 한다고?"라며 당황했지만 연기자들의 능숙하고 열띤 연기와 연주, 그리고 모짜르트의 웅장한 음악들이 계속 흘러나오면서 그런 염려는 어느덧 날아가 버렸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밀러스 포먼이 영화로 만들기도 했던 피터 쉐퍼의 '아마데우스'나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으로 탄생한 비극적 수다쟁이 이야기 '시라노 드 베르쥬락' 모두 주인공들의 대사량이 엄청 많고 연기의 합이 매우 중요한 희비극인데 다들 왜 이렇게 잘하는 걸까. 이 사람들은 왜 대형무대로 진출 안 하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어제 연극 시작 직전에 입구 앞에서 안내를 하는 배우를 붙잡고 물었다. "어제 보니 극장이 작은데 연기는 너무 잘해서 놀랐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여기서만 일하나요, 아니면 다른 데서도 일하면서 여기에도 출연하는 건가요? 그리고 로비 카페에서 커피 내리고 있는 분이 이 극단 연출님 아닌가요? 카페 책꽂이에 있는 연극 이론서 다 번역한 분도 그분이죠?"

극장 입구에서 웬 남자가 나타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걸 물어서 당황할 수도 있는데 그 연기자는 친절하게 웃으면서 찬찬히 다 대답을 해주었다. 여기서 연기하는 분들은 다른 곳에서도 일을 하는 배우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카페의 바리스타가 그 연출님 맞고 그 번역자인 것도 맞는데 그분이 좀 '신비주의를 표방하고 싶어'하는 분이라 제가 이런 얘기했다고 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연극 즐겁게 잘 보고 가시라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안똔체홉극장을 찾아보았다. '체홉 공연 전문 극장'을 표방하는 이 극장의 중심엔 애플씨어터 전훈 대표가 있었다. 그는 극단 대표이자 연출자로 2004년 '체홉 4대 장막전'과 2014년 '체홉 숨겨진 4대 장막전' 등 15여 년간 해 온 체홉에 관한 번역, 연출을 도맡아 온 사람이었다. 그가 대표로 있는 애플씨어터 - 극단 애플씨어터는 러시아 1세대 유학파 전훈이 2000년에 창단한 단체로 하이퍼 리얼리즘(극사실주의極寫實主義) 연극을 위주로 스따니슬랍스끼 메소드에 의한 연기스타일을 바탕으로 한 작품을 공연하고 있다 - 를 중심으로 2014년부터 시작된 전용극장의 운영은 한국연극계 큰 울림을 주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는 서울예술대학 등에서 제자를 가르치기도 했고 뮤지컬과 연출·극작분야에서 명성을 얻기도 했지만 가장 유명한 건 이 안똔체홉극장과 안똔체홉학회를 운영하는 것이다.


어제 '시라노' 1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옆에 앉아 있던 여성 관객이 "집이 서울이세요?"라며 말을 걸어왔다. 자신은 이 연극을 보기 위해 기차를 타고 춘천에서 왔다는 것이었다. 시라노에서 록산 역을 맡은 배우와 아는 사이라 '배우할인'을 받긴 했지만 그보다는 이 연극이 너무 보고 싶어서 달려온 것이라고도 했다. 아내와 나는 그 성의와 체력에 감복했다. 이런 관객들에 비하면 집에서 극장까지 천천히 걸어올 수 있는 우리 부부는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고 사는 건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은 연극이 끝나면 다시 기차를 타고 춘천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2부가 끝나고 열띤 박수 소리를 치고 옆을 돌아보니 그분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연극은 2023년 4월 9일까지 상연한다. 며칠 안 남았다. 그러나 안심하시라. 안똔체홉극장은 당분간 건재할 것이고 극장이 존재하는 한 이 레파토리들은 계속될 것이다. 다시 기회를 노리면 된다. 가격적 면으로도 추천하지만 그냥 연기와 연출만 보더라도 강추한다. 연기자들의 합이 좋아서 드기슈 백작 앞에서 "그러슈?" 같은 애드립은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만큼 여러 번 했고 잘 짜여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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