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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14. 2023

영화와 인생의 닮은 점과 다른 점에 대하여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


2,3년 전 《죠스》를 보러 극장에 간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 스쳐 지나가듯 봤던 영화를 다시 보고 싶기도 했고(웬일로 중학교 때 소설로 읽기도 했다) 돈이 모자라 나무 모형으로 만든 상어를 물속에서 흔들고 거기에  윌리엄스의 음악에 입혔다는 죠스의 전설적 등장을 큰 화면으로 다시 한번 느끼고 싶기도 해서다. 스필버그는 너무 고생을 해서 다시는 바다 쪽은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맹세했다지만 결과적으로 이 영화는 세계 최초의 블록버스터가 되었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흥행 감독의 표상이 되었다.


 스필버그가 감독과 공동 각본을 맡은 《파벨만스》를 보면서 그가 얼마나 모든 걸 영화적으로 생각하는지 깨달은 것은 어린 새미가 맨 처음 카메라를 선물 받고 찍은 장난감 기차 충돌 장면이다. 극장에서 맨 처음 본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해'를 떠올리며 찍은 이 짧은  필름은 인류 최초의 영화가 뤼미에르의 형제의 《기차의 도착》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친구들과 금괴 탈취 서부극을 찍던 그는 필름에 구멍을 뚫는 꾀를 냄으로써 '특수효과'를 일찍 터득하기도 한다. 그리고 혼자 편집을 하며 중얼거린다. "이건 페이크(가짜)야." 영화는 현실과 다르며 편집에 의해 얼마든지 왜곡되고 분칠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데 실제로 그는 가족 캠핑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을 빼버림으로써 자신의 말을 현실로 구현한다.


인생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교차한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은 장면에도 갈등과 슬픔은 끼어들고 죽을 것만 같은 상황이 계속되다가 어느 순간 희망의 빛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편집할 권리는 없다. 졸업 무도회에서 여자친구에 차인 새미는 너무 괴로워 영사기 앞에 얼굴을 묻지만 그의 심정과 다르게 그기 찍은 필름은 그 순간 친구와 선생님 들에게 격찬을 받는다. 영화라는 매체의 아이러니요 인생이라는 드라마의 역설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도 봤듯이 미셜 윌리엄스의 연기와 아우라는 언제나 최고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에서 괴물 같은 전도사 역할을 맡았던 폴 다노는 또 어떤가. 이들 사이에서 '선량한 악역'을 맡을 배우로는 적어도 세스 로건 정도는 되어야 하는 걸 스티븐 스필버그는 잘 알고 있다. 그는 모든 것을 영화적으로 생각하니까. 그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영화를 찍었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그는 정말 영화의 A부터 Z까지 모든 걸 경험한 사람 같다.  


영화 후반부 새미가 찾아간 TV시트콤 제작사의 사장이 "너는 영화 쪽으로 가는 게 낫겠다. 아, 세계 최고의 영화감독을 잠깐 만나 볼래? 마침 옆방에 계신데."라며 데려간 사무실에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와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 포스터가 카메라 팬으로 돌아가며 비출 때 내 입에서는 "아, 존 포드...."라는 이름이 감탄사처럼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존 포드 감독으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나와 시거에 성냥불을 붙일 줄은 몰랐다. 포드 감독은 스무 살의 새미에게 포스터에서 뭐가 보이느냐고 묻는다. 그리고는 말한다. 지평선이 아래쪽에 있거나 위쪽에 있으면 재미있고 중간에 있으면 영 재미없는 것이라고. 카메라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인상이 얼마나 달라지는지 말해주는 금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차갑거나 뜨겁거나 해야 한다. 미지근한 물은 배만 부르지 결코 마시고 싶은 물은 아니다. 비록 이혼을 하지만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을 잘 이해하고 있기에 포드 감독에게 쫓겨났어도 새미는 희망에 찬 표정으로 할리우드 공장을 걸어갈 수 있는 것이다. 영화와 인생은 다르지만 인생은 이토록 영화를 닮아 있다.


스필버그는 이 이야기를 찍고 싶어서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좀처럼 울지 않는 주인공이나 결국 선량으로 무장한 감독의 순진한 세계관은 여전히 짜증이 나지만 그래도 자신을 미화하거나 흥분하는 일 없이 모든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그려낸 점은 정말 어른스럽다. 더구나 그는 영화에 있어서만큼은 '진심' 그 자체인 사람 아닌가. 151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지나갔다. 극장에 와서 이 영화를 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영화 제목 '파벨만스'는 꼭 그렇게 썼어야 하는 건지 묻고 싶다. 극장에서 들어보니 실제 발음은 '페이블먼스'에 가깝던데(페이블먼 가족이라는 뜻이고 독일어 'fabel'은 이야기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언 매큐언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어톤먼트'의 뜻이 뭔가 찾아보니 속죄더라는 후배의 말이 생각나는 표기법이었다. 영어를 좋아하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이니 영화 제목 표기도 이젠 좀 달라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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