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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15. 2023

책쓰기 워크숍에 ‘오작동’이란 별명을 붙인 이유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 출신 작가들 합동 북토크를 했습니다


서울 안국동 근처에 팔판동이라는 동네가 있다는 거 아세요? 처음에 무슨 동네 이름이 저래? 하며 웃었는데 조선시대 한 동네에서만 판서가 여덟 명이나 나와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면 성북동에 있는 저희 집도 오작동이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어제 을지로3가에서 했습니다. 저희 부부가 운영하는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에서는 작가를 다섯 명이나 배출했으니까요.

어제는 이른바 '어벤저스의 밤'이었습니다. 저희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에서 배출한 작가 다섯 명을 모시고 합동 북토크를 하는 날이었거든요. 을지로3가에 있는 느티책방 2층에 최은숙, 성현주, 이일우, 이시문, 이대형 작가를 모시고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방청객 모집 인원이 50명이었는데 너무 많은 것 아닌가 했던 염려가 무색하게 신청자 중 단 두 명 빼고는 모두 참석해 주셔서 아주 열기가 뜨거운 행사가 되었습니다. 작가의 지인은 물론 이런저런 인연으로 서로 알게 된 분, 그리고 SNS 공고를 보고 책 쓰기와 글쓰기가 궁금해 찾아오신 분까지 다양한 구성원이 금요일 저녁 7시 30분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저는 개회사를 겸한 인사를 하고 나서 "이 워크숍의 비밀 하나 알려 드릴까요?"라는 멘트로 북토크의 문을 열었습니다. 제가 해드린 얘기는 오늘 모인 작가들이 모두 훌륭한 책을 낸 건 물론 개중에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방송 출연을 거쳐 강사로 활동하는 분까지 생겼지만 처음엔 하나 같이 '내가 과연 책을 쓸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에 시달리던 평범한 작가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문은 무대에 오른 작가님들은 물론 관객으로 오신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소행성 어벤저스들은 이날 그런 의문에 정확하고도 실질적인 책 쓰기 팁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대방출해 주셨습니다.  


이일우 작가는 책을 쓰기 전에 이런 북토크에 다니는 걸 무척 좋아하는 방청객이었다는 고백을 함으로써 공감을 얻었습니다. 좋아하는 걸 꾸준히 해서 위치가 바뀐 셈이죠. 그는 책을 낸 후 '직업적 자존감'이 올라간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고 했습니다. 도봉구에 사는 어떤 고등학생이 책을 읽고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고 내친김에 직접 지방의회 견학까지 갔던 일화는 지방의회에 근무하는 분들에게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슈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본인이었으니 이일우 작가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책을 씀으로써 대우가 달라진 사람의 표상 같았습니다(마침 이날이 2쇄 본 배포일이라 더 뜻깊었습니다).

어떻게 자신의 얘기를 책으로 쓸 수 있었느냐는 방청객의 질문에 성현주 작가는 "미안한 얘기지만 저는 타고난 문재(文才)가 없어서 고시공부 하듯 기를 쓰고 책상 앞에 앉아서 썼습니다."라며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워크숍에서 요구하는 마감의 압박과 윤혜자·편성준의 긍정적인 리뷰 태도, 그리고 멤버들 간에 주고받는 솔직한 소감과 격려 덕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은 많은 독자들의 가슴을 울려 단숨에 10쇄를 넘겼고 성 작가는 인세 전액을 서울대어린이병원에 기부했다고 밝혀 박수를 받았습니다. 성 작가의 대답이 끝나자

저는 바로 좋아하는 소설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인터뷰에서 밝힌 "I', slow writer."라는 말을 소개하며 글쓰기에 왕도가 없음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빨리 쓰나 천천히 쓰나 결국 그 사람이 쓰는 글은 거의 같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도 논지를 펼쳤습니다. 작가 안에 들어 있는 글쓰기 능력은 사실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더 열심히 쓰는 수밖에 없는 거죠.


최은숙 작가도 예전부터 늘 글을 쓰긴 했는데 막상 워크숍에 와서 책을 기획하고 브런치 대상을 받은 뒤 정말로 책이 나온 뒤부터 떳떳하게 '집필 중'이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된 게 가장 기분 좋은 일이라고 했습니다. 글쓰기 루틴을 묻는 질문엔 밤 열 시부터 책상에 앉는 편인데 한 번 앉으면 두세 시간이 훌쩍 가기 때문에 다음날 출근을 위해 열두 시를 넘기지 않으려 한다는 나름의 고충을 털어놓았습니다. 작가가 된 이후로 강연을 많이 다니게 된 거도 좋지만 그보다 기쁜 것은 누군가와 모여 글을 써보자고 해도 이젠 왜?라고 묻는 일이 없는 것이라 했습니다. 작가가 글  써보자고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이대형 작가는 술에 관한 책을 쓰는 건 자료를 모으는 게 가장 큰 일이라고 하면서 이번 책을 쓰기 위해 5년 정도는 자료를 모으고 분류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술에 대한 일인자답게 매달 칼럼을 세 개 정도 쓰고 있다고도 했고요. 술박사가 그렇게 글만 쓰면  정작 술은 언제 마시냐는 질문에 "직업이 그래서 낮에 마십니다."라고 해서 부러움을 샀습니다.

이시문 작가는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의 집안 이야기를 시시콜콜 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안팎의 의심에 시달렸는데 출판사 편집장과의 심도 깊은 논의와 의견 교환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엔 이시문 작가는 워낙 필력이 뛰어나고 입심이 좋아(제가 별명을 '전설 따라 삼천리'라고 붙였습니다) 누가 말려도 결국 책을 냈을 것입니다. 마침 이시문 작가가 책을 낸 출판사의 대표인 한기호 소장님도 오셔서 고마운 자리였습니다. 다섯 분 작가 중 출판사 사장님이 북토크에 오신 건 한 소장님이 유일했습니다.


방청객석에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맨 앞에 앉아 작가님들 소개가 있을 때마다 박수를 치며 이름을 연호해 준 분들은 최은숙 작가의 동네 지인들이었습니다. 이 분들 덕분에 행사 분위기가 확 산 것은 물론입니다.  저희 집에서 운영 중인 '독하다토요일' 멤버들이 오셨고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의 다른 기수들도 오셨습니다. 아주 오래전 아내와 인문학 공부를 같이 했던 분도 공고를 통해 참가비를 미리 송금하고 찾아오셨습니다.  며칠 전 저희 부부의 사진을 찍어준 전윤영 사진작가도 오셨고 워크숍 멤버 중 최근에 책을 내신 송경화 선생이 『보바리 부인이 탱고를 배웠었다면』을 전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제목도 워크숍에서 제가 드린 말씀을 귀담아듣고 기억했다가 채택해 주신 덕분이죠. 고맙습니다.

불교방송 박광렬 PD처럼 와인을 선물로 가져오신 분도 세 명이나 되었고 술박사 이대형 작가 덕분에 에잇피플부르어리에서 쌀로 만든 맥주 '미미사워'를 오신 분들께 한 병씩 드릴 수 있었습니다(저는 3개월 금주 중이고 행사의 사회자이기도 해서 못 마셨습니다). 또한 에그피알에서 김나영 부사장이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레스큐어 버터바'를 보내주었습니다(저는 진행을 하다 보니 못 먹었습니다. 억울합니다. 맛있어 보이던데).

윤혜자 선생이 나와서 성북동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의 커리큘럼을 소개하고  마침 5월에 새로 시작되는 월요일 저녁반을 이틀 전에 취소한 분이 계시니 특별히 이 자리에서 원하시는 분에게 우선권을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즉석에서 한 제안이지만 두 분이나 합류 의사를 밝히는 바람에 며칠을 두고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작가 사인 시간엔 느티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들고 작가님에게 오신 분이 많았습니다. 다섯 작가의 책은 물론 저와 윤혜자의 책을 들고 와 사인을 부탁하는 분들도 있어 감동했습니다. 부부가 함께 오신 분 중 남편께서 “저도 실수를 많이 하는 성향이라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를 반갑게 읽었는데 아까 성현주 작가 소개하면서 봉숭아학당을 또 영구학당이라고 잘못 말하는 걸 보고 아, 역시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해서 낄낄낄 웃기도 했습니다. 당일 몇 권이나 팔릴지 몰라 서점에서 책을 적게 가져다 놓은 것 같다고 행사를 진행해 준 김혜민 선생이 안타까워하기도 했습니다. 저희 집 옆방에 사는 김혜민 선생은 어제 인원 체크부터 안내, 장소 관리, 촬영 등 많은 수고를 해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기호 소장님은 가시기 전에 권오준 작가의  『강연자를 위한 강연』이라는 책을 꺼내 제게 건네주셨습니다. 저의 글쓰기 강연이 더 많아지고 점점 더 확대되길 바라는 마음에 주신 거겠죠. 고맙습니다.


어젯밤엔 너무 피곤해 죽을 것 같더니 오늘 아침엔 일찍 눈이 떠져 화장실에서 장을 비운 뒤 첫 줄을 쓰고 계속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리뷰를 썼습니다. 작가도 방청석도 진지하고 따뜻한 자리였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책을 쓰고 싶은데 될지 모르겠다고 한 분에게 이일우 작가가 “금요일 저녁 이 시간에 여기 오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쓰실 수 있는 힘을 가진 분”이라는 대답을 했는데 그 말이야말로 정답입니다. 윤혜자 선생이 정한 이 행사 타이틀이 ‘써야 책이 된다 ‘였습니다. 맞습니다. 여러분. 저희 책쓰기 워크숍에 오셔도 좋고 안 오셔도 좋습니다. 일단 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책을 내면 반드시 삶이 달라진다는 점을 꼭 기억하십시오. 그렇게 된다는 증거를 대라고요? 일단 제가 그 케이스이고요. 아, 첫 책을 쓰고 여기 모였던 다섯 명의 작가들이야말로 아주 훌륭한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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