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May 06. 2023

어린이날 남편이 받은 선물들

채식하는 아내가 남편에게 고기 사준 이야기

5월은 저희 커플에게 중요한 달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보고 사귀기 시작한 날이 들어 있고 결혼식과 제 생일도 나란히 있습니다. 올해는 결혼 10주년이기도 하죠. 원래는 결혼식 올린 지 10년째 되는 해엔 신혼 여행지인 하와이 호텔에 가서 놀다 오기로 했지만 여러 가지 상황으로 그 약속은 뒤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우선 회사를 그만둔 제가 경제적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요즘 서울시민대학이나 작은 서점 들에 가서 글쓰기 강연을 하는 한편 대학에 나가 카피라이팅 강의도 하고 있지만 매달 빠듯한 살림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강의가 들어오면 개인 사정을 들어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여행을 포기한 것은 물론 결혼기념일을 위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제 광장시장에서 약속이 있어 가는 길에 그 얘기를 하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아내는 "결혼기념일을 맞는 건 당신뿐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인데 뭐가 그렇게 당신만 미안해?"라고 말했습니다.  계획성 없이 사는 저를 위로하느라 해준 말이지만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죠.  어서 새 책도 쓰고 좀 더 유명해져서 '그만 미안해하며' 사는 게 꿈입니다.

 

어린이날인 어제 낮에는 아내가 예매해 둔 연극 《누수공사》를 보았습니다. 박용우· 이지혜 배우 등이 나오고 '네버엔딩플레이'가 제작 지원을 맡은 부조리극인데 너무 재밌더군요. 우리는 제가 부탁할 게 있어서 점심때 만났던 김기상 선생의 표까지 현장 구매해서 셋이 연극을 보고 헤어졌습니다. 2시 연극인데 집으로 돌아오니 배가 고프더군요. 뭘 먹을지 결정하지 못한 아내와 저는 일단 밖으로 나갔습니다. 오랜만에 구포국수나 갈까 하고 걸어가 보니 5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이었습니다. 아내가 발길을 돌려 고깃집인 성북동10길로 들어갔습니다. 저에게 오겹살과 대패삼겹살 이인 분을  사주고 자기는 고기 없는 김치찌개를 먹겠다는 것입니다. 이 년 넘게 채식을 하는 아내가 고깃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대단히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걸 알고 있는 사장님도 놀라며 인사를 했고 마침 놀러 오셨던 세븐일레븐 전 사장님(지금은 그만두셨습니다)도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아내는 제가 요즘 기운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아 고기를 사주기로 했다며 웃었습니다. 술은 한라산 소주를 시킬까 했더니 고개를 저으며 증류식 소주인 화요을 시켰습니다. 비싸더라도 좋은 술을 마시라는 것이죠. 아내는 "앞으로도 우리 둘이 술을 마시면 이 정도 돈이 든다고 생각해."라며 술을 따라 주었습니다. 저는 어린이날 선물 치고는 너무 푸짐하다며 좋아 소리를 질렀고 세븐일레븐 전 사장님은 "무슨 어린이가 저렇게 늙었어요?"라며 핀잔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게 사장님에게 촌스러운 커플 사진까지 찍어 달라 부탁을 하며 기분을 냈습니다. 고기 이인 분과 계란찜, 김치찌개 그리고 화요 두 병을 마시고 나와 집으로 왔습니다.


너무 일찍 잤더니 새벽 2시에 깨고 말았습니다. 저는 마루로 나와 그제 대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온 『달러구트 꿈 백화점』('100만 부 기념 합본호: Gift Edition)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예스24 인터뷰를 잠깐 찾아보니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이미예 작가는 구상 단계에서 수백 번 순서를 바꿔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었고 한 권을 쓸 만한 분량이 모였다고 생각했을 때 퇴사를 한 뒤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집필한 이 판타지 소설은 1,2권 합쳐 100만 부가 넘게 팔린 슈퍼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비가 오는 새벽에 독서노트에 메모를 해가며 읽는 소설의 맛은 각별했습니다. 잠깐 화장실에 가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브런치에 들어가 제 이름을 검색해 보니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리뷰 중 하루 전에 읽은 글이 다시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이 너무 감동적인 겁니다. '글을 잘 쓰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게 뭔지 콕 찝어 알려주는 일타강사 같은 책'이라니요. 너무 기뻐서 그 글도 공유합니다. 올해 어린이날은 정말 받은 게 많은 날이네요.  


https://brunch.co.kr/@bakilhong66uhji/348#comment

매거진의 이전글 책쓰기 워크숍에 ‘오작동’이란 별명을 붙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