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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21. 2023

이메일 때문에 큰 실수를 할 뻔한 이야기

중요한 업무일수록 크로스 체크를 해야 하는 이유



이주일 전에 잘 아는 출판사 부장님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출판사 내부에서 이미 진행하고 있는 기획이 하나 있는데 이번 시즌에  우리 부부를 그 프로젝트의 새로운 진행자 겸 작가로 초빙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프로젝트 구성과 내용은 당연히 탐이 났지만 지금 벌여 놓은 글쓰기 강연이나 책 쓰기 워크숍 일정을 생각하면 덥석 좋다고 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러기엔 시간도 많이 할애해야 하고 책임감이 막중한 일이었으니까. 아내와 나는 주말 내내 고민을 하다가 결국 간곡하게 거절을 하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에 정중하게 거절 이메일을 써서 아내에게 먼저 보여주고 담당자에게 보냈다.  부장님에게도 카톡 메시지를 따로 드릴까 하다가 월요일 오전부터 그런 소식을 듣게 하는 게 죄송스러워서 그냥 참기로 했다. 담당자가 이메일을 확인하고 나면 어련히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중요한 수업이나 워크숍이 있었고 중간에 부친상을 당한 후배에게 들러야 해서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서울여대 중간고사를 치른 목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아내와 나는 목포에 사는 이 선생이 보내주신 홍어회를 꺼냈다. 손이 큰 이 선생은 홍어 살부터 내장까지 엄청난 양의 홍어회를 보내주셔서 일찍 들어온 손님방의 혜민 씨까지 만세를 부르게 했다. 우리 부부가 5월 5일까지 금주를 하는 바람에  혜민 씨도술 대신 물을 마시며 홍어를 먹어야 했다.

홍어회를 많이 먹어 배는 부른데 술은 마시지 않아 말똥 말똥한 이상한 상태로 잠이 들었던 나는 새벽 2시에 마루로 나와 아침 6시까지 김연수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을 읽고 메모를 하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아내도 오랜만에 아침 일정이 널널하다며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 게임도 하고 의미 없이 무한 재생 되다시피 하는 페이스북 동영상을 연거푸 시청하다가  갑자기 일어나 날씨도 좋으니 밥을 먹으러 동네로 나가자고 했다.

삼선시장과 성북천을 배회하다가 파스타 전문점 아삐에디에 들어갔다. 계 셰프는 아내의 책을 다룬 신문 기사에 식당 소개 글이 실리는 바람에 손님이 부쩍 늘었다며 고마워하셨다. 황송한 일이었지만 손님이 늘었다는 얘기는 너무나 반갑고 뿌듯했다. 둘이서 파스타를 세 접시나 비우고 일어났다.


너무 배가 불러 잠깐 벤치에 앉아 쉬자고 하다가 문득 월요일에 출판사에 보냈던 이메일에 아무런 답장이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실망스러운 이메일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답장을 안 하고 넘어갈 분들이 아니었다. 내가 너무 바빠서 체크를 못 했던 것이다. 스마트폰을 꺼내 '보낸 이메일함'을 열어보니 보낸 사실이 없었다. 황당했다. 출판사에 보낸 건 없고 그 직전에 아내에게 내용 확인 차 보냈던 흔적만 있었다. 나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내가 보낸 이메일은 '임시 보관함'에 있었던 것이었다.

얼른 담당자에게 이메일을 다시 전송하고 전화를 걸었다. 식사 중이었던 담당자는 황당해하면서도 너무 걱정 말라며 이왕 이렇게 된 것 훗날을  기약하자며 오히려 놀라고 당황한 나를 위로했다.  조금 전가지만 해도 내가 거절 이메일을 보낸 걸 모르고 오늘 오후 미팅만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 정말 죄송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부장님에게도 카톡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전화를 걸어 또 사과를 했다. 나는 미안하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당당자들은 나로 인해 시간을 까먹었고 이제 새로운 사람을 섭외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권오준 작가의 『강연자를 위한 강연』을 읽고 있다. 어떤 강연자가 제일 나쁘냐는 질문에 '지각을 하는 강사'라는 대답이 나온다. 그가 아무리 실력이 좋고 인기가 하늘을 찌르더라도 오기로 한 시간에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오늘 오후 4시 미팅 시간 이전에 실수를 깨달아 최대의 참사는 막았지만 나는 이미 유구무언이다. 이 모든 게 이메일 하나 잘못 보낸 것 때문에 일어났다. 그러나 이메일이 이메일 하나로 끝날까. 내가 다른 메신저나 통화로 확인을 했더라면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닌 다음에는 늘 조심하고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크로스 체크를 하자.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 알람을 두세 번에 걸쳐 맞춰 놓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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