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Apr 24. 2023

눈앞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훔칠 수 있나

권오준의 『강연자를 위한 강연』

인생은 참 알 수가 없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광고를 만들고 광고주를 설득하던 내가 이젠 책을 세 권이나 내고 글쓰기 강연을 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은 하늘의 별처럼 많지만 글을 쓰며 강연까지 잘하는 작가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나도 글을 쓰거나 책을 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과 생각을 나눠주는 걸 주업으로 삼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강연을  하는지 늘 궁금하다. 실제로 다른  작가나 강사들의 강연을 유튜브로 찾아보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틀에 박히고 경직된 내용에 실망하곤 한다. 강연의 현장성과 역동적인 분위기를 동영상으로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한 책이 나왔다. 동화책도 쓰고 그림책도 내는 권오준 작가의 『강연자를 위한 강연』이다.


어쩌면 강연은 작가에게 주어진 선물일지도 모른다. 책이나 콘텐츠로 만든 자기 세계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책을 받아 맨 뒤 에필로그를 펼쳤다가(편집 후기나 '작가의 말'부터 읽는 습관을 아직도 못 고쳤다) 제일 먼저 읽게 된 게 '어떤 강연자가 제일 나쁘냐'에 관한 질문이었는데 대답은 예상 밖으로 '펑크를 내는 작가'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아무리 똑똑하고 좋은 강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필요할 때 그 자리에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어느 교수님의 주례 경험담을 떠올렸다. 주례를 맡아 인천에 있는 예식장으로 가던 그 교수는 토요일 점심때의 교통 체증을 계산에 넣지 못했던 것이다. 속절없이 막히던 길에 서서 진땀을 흘리던 그는 결국 차를 길에 버리고 예식장까지 뛰어갔다고 한다. 한 시간을 기다린 하객들 앞에서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주례사를 펼쳤음은 물론이다. 그 뒤로 그 교수는 지하철역과 가까운 예식장이 아니면 절대로 주례를 맡지 않는 철칙이 생겼다며 웃었다. 권 작가는 지방에서 일찍 강연을 할 때는 아침 도시락을 싸가라는 꿀팁까지 전해준다. 지방에서는 아침에 식당은커녕 문을 연 가게가 하나도 없을 때가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게 영화를 보는 것이라면 강연은 연극 관람과 비슷하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언제든 틀리거나 달라질 수 있고 청중들의 반응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강연과 그렇지 못한 강연으로 나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오준 작가는 강의와 강연은 엄연히 다르다면서 강연의 뒤의 글자 '연(演)'에 주목한다. 강연은 청중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행위인데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연기하듯 하면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역시 일 년에 300회 이상의 강연을 하는 '최다 강연자'다운 생각이요 자세다. 아직 책을 다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은 나 같은 강연자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마음을 훔쳐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인 것 같다. 맨 뒤에 나오는 독일 작가의 동화 '지각대장 존'도 너무 재밌다.


사실 이 글은 책을 다 읽고 쓰려고 했는데 오늘 아침에 페이스북을 열었더니 권오준 작가가 나의 '친구신청'을 받아주었길래(기억이 안 나는데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친구신청을 한 것 같다) 반가운 마음에 이것부터 쓰는 것이다. 오늘 서울시민대학에서 ‘내 인생을 연료 삼아 멋진 에세이 써보기’라는 제목의 강연 첫날이라 할 일도 많고 준비할 것도 있는데 권오준 작가 때문에 소중한 아침 시간을 다 날렸다. 그래도 나는 이 리뷰를 쓰며 책을 다시 펼쳐보는 기쁨을 누린 셈이다. 아마 오늘 강연이 끝나고도 또 읽을 것이다. 그만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시대에 일어나도 전쟁은 구체적 비극인 것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