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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27. 2023

외로움을 영혼의 불쏘시개로 삼은 남자  

김민식 PD의 『외로움 수업』 리뷰

김민식 PD는 죽고 싶었을 것이다. MBC라는 방송사의 스타 PD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명망이 잘못 쓴 칼럼 한 편에 모두 날아가 버렸으니 말이다. 김민식 PD의 『외로움 수업』을 사며 맨 처음 한겨레 칼럼 얘기가 안 나오면 책을 덮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건 치명적인 실수였고 바닥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다행히 저자는 발가벗는 마음으로 그 사건을 맨 앞에 놓고 글을 시작한다. 유명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잘못을 까발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텐데 그는 스스로를 외로움의 정중앙으로 가져다 놓는다. 매일 아침 글을 올리던 블로그를 닫았고 24년 간 다니던 방송국도 그만둔다. 그리고 그가 다시 시작한 일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술, 담배, 커피를 안 하는(어쩐지 사람이 얄미워 보이더라) 김민식 PD 곁을 지켜주는 것은 언제나 책이었다. 그렇다고 문학적 취향이나 성취를 목적으로 독서를 하는 건 아니다. 그는 오로지 재미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책을 읽는다. 말하자면 그는 오로지 재미, 재미에 중독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번엔 살기 위해서 책을 읽었다. 최재천 교수의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에서 '고령화 사회란 모두가 외로워지는 세상'이라는 말에 용기를 얻은 그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는 '무엇을 하나 더 소유하는 것보다 하나 더 경험하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고 결심한다. 유튜브 '꼬꼬독'에서도 느꼈던 것처럼 그가 상관없는 것들을 연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렇지만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까지 자신의 처지와 연결시킬 줄은 몰랐다. 스칼렛이 다시는 굶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집안 이야기로 전환하는 능청스러움은 글을 많이 써본 사람이라 가능한 일이다. 뻔한 자기반성과 변명이겠지 하는 마음(얼핏 들춰보니 존댓말로 쓰여 있길래)으로 책을 시작했다가 화장실 갈 때도 들고 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어느덧 저자의 스토리텔링에 설득당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글을 잘 쓰거나 강연을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인생의 법칙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뽑아낸다는 것이다. 김민식 PD는 2013년 노조부위원장 역임 이후 6개월 간의 대기발령을 받았고  2020년엔 신문 칼럼 사태로 모진 비난에 시달렸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자전거 사고까지 당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맞게 된 전격적 외로움은 오히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자전거 사고는 '시련과 좌절은 인생에서 상수'라는 통찰을 안겨 주었다.

이제 겁날 게 없어진 그는 자신의 삶을 바로잡기 위해서 외로움과 싸운다. 그리고 다시 스스로를 긍정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오랜 외모 콤플렉스도 던져 버렸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 웃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치유가 시작된다'라고 한 빅터 프랭클의 말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는 "남들이 놀리면 상처가 되지만 스스로 가자고 놀면 웃음의 소재가 된다."라고 책에 썼는데 이는 '유머 중엔 자기 비하 유머가 최고'라며 첫 책을 실수담으로 채웠던 나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김민식 PD가 잠깐 죽고 싶었을 것이라는 문장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그런데 죽고 싶은 게 뭐 나쁜 건가. 우리는 좋아 죽겠다, 배고파 죽겠다는 말도 아무렇지도 하고 살지 않나. 언제 죽을지 모르니 죽기 전까지 재밌게 살면 그만이다. 별 기대 없이 펼쳤다가 외로움을 영혼의 불쏘시개로 삼은 남자와 만났다. 3쇄 소식을 며칠 전 페이스북 담벼락에 올렸길래 술 한 잔 하겠구나 생각하다가 아, 이 분 술 담배 안 하지 하는 생각에 얼른 리뷰나 써서 선물하자 마음먹었는데 바빠서 늦어지고 말았다. 아무튼 참 쓸모가 많은 책이니 많이 사서 읽고 선물도 하시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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