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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26. 2023

'작가가 된 독자'가 보내온 놀라운 편지

김세영 작가는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이다』를 읽고 책을 썼습니다

그제 어제 생일이라고 선물을 보내주신 분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고맙고도 황송한 일이죠. 이 택배도 그런 거겠지 생각하며 보낸 분을 살펴보니 '김세영'이라고만 쓰여 있었습니다.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예쁘게 포장된 된 박스를 여니 손으로 쓴 네 장짜리 편지 한 통과 책 두 권이 들어 있더군요.


내용은 놀라웠습니다. 경남 합천에 사는 김세영이라는 분이 이번에 첫 책을 내게 되었는데 그걸 준비하면서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이다』에 많은 빚을 졌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적혈구가 깨지는 희귀 난치질환을 앓고 있는 김세영 작가는 "독자를 웃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 울릴 수도 있어야 한다." "당신만 울면서 쓰는 거 아니다. 작가는 다 운다." 같은 저의 책 내용에 감화되어 자신의 책을 쓸 용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특히 '단 한 사람을 위해 썼다. 유머와 위트가 담겨 있는 매력적인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바로 당신을 위해'라는 구절에 밑줄을 박박 그었다고 합니다. '당신'이라는 단어에는 몇 겹으로 네모와 괄호를 치며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고요.  급기야는 제 책을 노트북 왼쪽에 놓고 항상 들춰 보며 원고를 썼다고 합니다.


고마웠습니다. 기쁘고 영광스러웠습니다.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에도 참가하고 싶다 하셨지만 슬쩍 들춰보니 김세영 작가는 이미 저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필력이나 태도기 열려 있는 분이더군요. 책 제목 '역경이 싸대기를 날려도 나는 씨익 웃는다'에서 알 수 있듯이 김 작가는 자신의 불행과 역경을 유머와 희망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아, 영광스럽게도 책의 제목 역시 '제목은 한 줄의 페로몬 향수다'라는 저의 소제목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합니다.


귀여운 고백도 있었습니다. 편지에 '추신'이라고 쓰고는  '편성준의 책보다 더 재밌다'라고 머리말에 썼는데 그건 출판사에서 그렇게 써야 한다고 해서 쓴 것이니 이해를 바란다는 구절이었습니다. 저는 깔깔 웃으며 당장 편지 맨 밑에 적어 놓은 작가님의 전화번호를 저장했습니다.  그리고 편지와 책을 받아 너무 기쁘고 고맙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프롤로그에 쓰신 내용은 아무 상관없으니 전혀 걱정 마시라고도 썼습니다.

지금은 바쁘니 내주 초에 꼭 책을 찬찬히 읽고 리뷰를 쓰겠다 다짐했습니다. 손편지를 받은 것도 오랜만이지만 내용이 너무 놀라워서 저는 잠깐 구름 위에 붕 뜨는 기분마저 느꼈습니다. 그때 마침 제가 부희령 작가의 『구름해석전문가』를 읽고 있어서 그랬나 봅니다.


암튼, 너무 기쁜 일이라 일단 급하게 자랑삼아 편지 받은 이야기부터 썼습니다. 마케팅을 많이 못해서 책 판매량이 생각보다 저조하지만 이런 사연이 자꾸 쌓이다 보면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이다』의 역주행도 가능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제가 편지 내용을 출판사에 전달해도 되겠느냐고 묻자 김 작가는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김세영 작가님. 오늘 하루 저를 미치도록 행복하게 만들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생일선물로 보낸 게 아님을 알지만 그래도 저에겐 최고의 생일선물이었습니다. 책 잘 읽겠습니다. 서울에 오실 일 있으면 꼭 연락 주세요. 밥 한 번 꼭 먹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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