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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28. 2023

고도는 오지 않는다는 오래된  스포일러

극단고래의 《굴뚝을 기다리며》리뷰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만큼 기다리는 이의 심정이 절절하게 표현된 시가 또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독자를 경멸하는 마음으로 몇 분 만에 긁어내리 듯 써서 잡지사에 넘겼다는 이 시는,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는 객체를 '민주'나 '통일'로 확장하는 바람에 후에 황 시인도 생각을 고쳐먹고 대표작으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너였다가/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다시 문이 닫힌다


《굴뚝을 기다리며》를 보는 동안 이 시가 자꾸 아른거렸다. 이해성 작가가 쓰고 연출한 이 연극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 했다 밝혔으니 당연히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먼저 떠오른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 이름이 나나와 누누로 바뀌었는데 이 이름들이 진짜라는 보장도 없다. 뉴스에서 본 고공 농성장면으로 눈에 익은 커다란 굴뚝 주변을 절룩거리며 걷던 두 남자가 서로의 이름을 묻는 과정에서 "나, 나..." "누...누구?" 같은 언어유희가 그대로 이름이 된 것이니까. 절룩거리며 걷는 이유도 발이 아프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도 "이 발" "저 발" "신발" 식으로 언어유희는 계속되는데, 의미 없는 대사에서 삶이나 세상의 의미를 찾으려는 부조리극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 희곡은 갈수록 정말 잘 썼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해성은 사무엘 베케트 원작을 고공 농성장과 다가올 로봇 사회로 대체함으로써 2023년 한국사회에서 펼쳐지는 구체적 갈등과 욕망을 그려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기다려도 고도는 오지 않는다는 오래된 스포일러처럼 나나와 누누가 기다리는(그게 굴뚝이든 희망이든) 것도 결국은 오지 못하리란 걸. 이해성은 조세희가 <난쏘공>을 쓴 1970년대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왔는가 또는 얼마나 나아졌는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이런 질문은 굴뚝과 관련이 있는 시인과 함께라면 더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023년 06월 03일 (토) 16시 공연 이후에는 이해성연출, 송경동시인, 차광호 고공농성 당사자 등의 대담이 있다고 한다. 송경동 시인의 시집에 홀딱 반한 나는 주말 다른 일정 때문에 그 대담을 보지 못하는 게 애석할 뿐이다.


뛰어난 각본에 비해 연기는 좀 아쉬운 면이 있는데 이는 배우들이 연기를 못해서라기보다는 그날 객석의 분위기 때문이라는 게 더 적절하겠다. 내가 관람한 5월 25일은 공연 첫날이라 그런지 배우들의 후배나 제자로 추정되는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지나치게 컸다. 그것도 대사로 인한 웃음이라기보다는 '나 저 배우 아는데, 너무 웃겨'나 '선배, 나 왔어요' 같은 제스처로 느껴졌고 그 분위기는 그대로 배우들에게 전달되어 결국엔 연기를 하다가 놓쳐버리는 기분마저 느껴졌다.  나이 어린 배우의 서툰 대사나 애드립 실패는 관객의 비협조에 비하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연극의 3 요소가  관객, 배우, 희곡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날의 관객이 다시 와서 방해를 하진 않을 것 같으니 희곡이 뛰어난 이 연극을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6월 11일까지 대학로의 연우소극장에서 상연한다.


(*극단 고래 기획팀에서 사진을 보내 주셔서 리뷰에 사용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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