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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08. 2023

역경도 유머로 승화시키는 남자의 책

김세영의 『역경이 싸대기를 날려도 나는 씨익 웃는다』

'불행 배틀'이란 말이 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동네 술집 '정희네' 주인 오나라가 권나라에게 "불행한 걸로는 나도 안 밀리는 여잔데. 배틀, 한 번 붙어볼래?"라고 하던 대사를 기억하는가. 에세이집 『보통의 존재』에서 되는 일이 없다고 술집에서 징징대던 친구들에게 식구들의 이혼 경력과 자살 시도 횟수를 나지막이 밝힘으로써 좌중을 잠재우던 이석원의 불행 '포스'를 기억하는가. 여기 그런 사람이 또 하나 있다.


김세영의  삶은 '어쩌자고'의 연속이다. 어쩌자고 그의 동생은 고1 때 조현병에 걸려 마흔두 살인 지금도 어린애로 사는가.  어쩌자고 그의 엄마 아빠는 그렇게도 사이가 나쁘기만 했나. 결국 두 사람은 그가 스무 살 때 이혼을 했다. 게다가 그는 또 어쩌자고 33세에 희귀난치질환(PNH) 판정을 받게 되고, 그 와중에 치매·파킨슨 환자가 된 아빠를 돌보는 역할까지 떠맡아야 했나. 이러다 보니 연애도 잘 안 된다. 회사 선배가 소개해준 여자는 부모의 이혼 이야기를 듣더니 '이혼한 부모의 자식이라는 현실을 감내할 자신이 없다'면서 떠난다. 이기적인 핑계요 몸 사리기이라는 걸 알지만 이 정도면 희망을 가지려야 가질 수가 없는 것 아닌가.


어느 날 늦은 점심을 먹으며 배구를 보던 그는 '교회는 성경, 불교는 불경, 그리고 배구는 김연경'이라는 응원용 플래카드를 보고 자신의 닉네임을 거짓말처럼 퍽하고 떠올린다. 그래! 배구는 김연경'이면 인생은 '김역경'이다. 있을 수 있는 어려움은 다 겪고 있는 자신의 이름을 '김역경'으로 바꾸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위화 장편소설 『인생』의 푸구이처럼 몽롱해지면서 메타 인지가 가능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는 닥쳐오는 역경들을 유머로 승화시켜 보기로 한다. 그러자 '우리 집은 인터넷이 안 터진다. 전화도 안 터진다. 내 속만 터진다... 욕지거리가 터진다.' 같은 문장들이 마구 써지는 것이었다. 경남 합천의 집에 돋아나는 풀을 바라보며 '사면이 풀(草)로 풀(Full)'이로구나 중얼거린 그는 잡초를 뽑으면서도 '몸은 좀 힘들지만 잡생각, 잡소리, 잡(job) 걱정이 다 뽑혀 나간다'라는 신박한 생각을 하게 된다. 김역경이 되니 역경도 유머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태도의 변화 때문인지 그는 '신약 투여 대상자'가 되어 두 달에 한 번씩 무료로 신약을 투여하게 된다. 글 솜씨가 알려져(본인은 얼떨결이라고 하지만) 책도 내게 된다.  이 대목에 내가 조금이라도 기여하게 되었다는 게 나는 너무나 기쁘고 영광스럽다. 지난주에 김세영 작가가 나에게 책과 함께 네 장 짜리 친필 편지를 보내주었는데 거기에 내 책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이다』에 많은 빚을 졌다는 고백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과장이요 엄살이다. 편지와 함께 도착한 책을 읽어보니 그는 내게 빚 진 게 하나도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와 아이디어로 '쇼생크 탈출'의 앤디처럼 조금씩 조금씩 글쓰기의 벽을 파낸 것이었다. 그건 어쩌면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제일 예쁘고 공부도 잘하던 여자애에게 썼던 연애편지를 읽고 "이제 열한 살밖에 안 된 너는 어디서 그런 표현을 배웠니? 맨 첫 줄부터 깜짝 놀라게 하더구나."라고 칭찬해 준 그 여자애의 어머니 덕분인지도 모른다. 즉 김세영은 어려서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것이다. 이제 첫 책이다. 나는 김세영이 계속 글을 쓰고 책을 냈으면 좋겠다. 독자들이 그의 글을 통해 희망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그 첫 번째 이유라면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책을 낼 때마다 이렇게 리뷰를 쓰는 기쁨을 누리고 싶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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