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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29. 2023

나중에 하겠다는 거짓말에 속지 않는 사람

윤영미의 『놀고 보고, 가고』

오늘 윤영미 아나운서의 출판기념회에 다녀왔다. 과천 추사박물관 근처에 있는 스타일리스트  권은순 선생의 작업실 겸 다목적 공간에서 열린  행사였는데 특별히 친한 친구들만 불렀다고 했다. 윤 아나운서와 친한 사람들은 사업가나 유명인 외에도 사진작가, 도예가, 글 쓰는 작가 등 예술가들이 많았다. 이런 쟁쟁한 셀럽들 틈에 우리 부부가 낄 수 있었던 것은 윤 아나운서와 같은 출판사에서 책을 낸 인연 덕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몽스북 안지선 대표, 그리고 출판마케팅 회사 타인의취향 한정덕 실장님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일찍 와서 음식 준비를 도와주고 있던 자란님은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먼저 일어났다.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고 여기저기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윤영미 아나운서가 유명인이라서만은 아니다. 진짜로 책이 재밌고 솔직하고 후련하다. 책은 말한다.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도 결혼하면, 대학 가면, 아이들 크면...... 하는 식으로 계속 미루다가 결국 때를 놓치고 죽는 게 우리의 인생 아니냐고. 나중에 하겠다는 다짐은 거짓말로 한 건 아니지만 결국 삶에 치이다 보면 나와 남에게 한 거짓말이 되어버리지 않더냐고.


물론 윤영미 아나운서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정도로 부자도 아니고 부잣집으로 시집을 간 것도 아니다. 잘 생기고 사람만 좋은 목사 남편은 도대체 돈 버는 재주가 없고 아들들도 외국에서 공부를 하느라 돈을 쓰기만 하는데 그걸 윤 아나운서 혼자 다 벌어 대고 있는 것이니 사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그런데도 볼 때마다 활력이 넘쳐 나는 건 어쩐 일일까. 비결은 누가 뭐래도 내 길은 내가 만든다는 의지와 신념이다. 그는 영미라는 촌스러운 이름도 싫어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영미투어, 영미상회 등으로 발전시킨다. 왜 제주도에 연세로 집을 얻어 무리하게 수리를 하느냐는 걱정스러운 잔소리엔 아예 집 이름을 '무모한 집'이라 붙이고는 한 술 더 뜬다.  물론 은행에 대출 연장하러 갔다 오면서 삶이 구차하고 비루해 길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는 언제나 인생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낸다. 그래서 밥을 누가 살 거냐로 잔머리를 쓰는 대신 윤영미라는 캐릭터와 인격, 그리고 끊임없는 공부로 세상을 압도하는 길을 택한다. 꼰대짓은 어떤 경우에도 삼가야 하고 후배들에게도 어설픈 충고보다는 차라리 밥을 사는 게 더 낫다는 게 예순 넘어서까지 발에 불이 나도록 달려오며 터득한 삶의 지혜다. 다른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면 에이, 잘난 척하고 앉아 있네 , 할 수도 있겠지만 윤영미가 하면 이상하게도 '인생을 먼저 살아 본 선배가 해주는 솔직한 조언'처럼 호쾌·후련하게 들리니 그것조차도 큰 매력이요 장점이다.


이 책은 윤영미 아나운서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 줄 한 줄 노트해 가며 쓴 흔적이 역력해서 속도감 있게  읽히면서도 도무지 허투루 넘어가는 페이지가 없다. 오늘 출판기념회에서 봤듯이 프리랜서로 살아오며 만난 인맥이 어마어마하고 그동안 보고 듣고 읽은 것들이 넘칠 지경이라 표정과 말투에서도 그런 점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러다 보니 책을 들추면 '산다는 것은 곧 말썽'이라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말이 자연스럽게 호출되고 『혼불』의 최명희 작가,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 출연한 앤디 맥다월의 인생철학 등이 무시로 인용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 '놀 수 있을 때 놀고 볼 수 있을 때 보고 갈 수 있을 때 가고'라는 긴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구입한 책에 윤영미 저자가 싸인을 해주며  '놀고 보고, 가고'라고 간단하게 정리를 해주는 걸 보고 역시! 하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항상 반 보 이상 앞서가면서도 막상 친한 친구들 앞에서는 가장 편한 자세로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사람. 그가 바로 윤영미 아나운서다. 아니, 윤영미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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