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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01. 2023

79세의 젊은이를 만난 날

한길사 김언호 대표 북토크

김미옥 선생이 김언호 대표 북토크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린 걸 보고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편성준샘도 참여한다!'라는 김미옥 선생 글 아래 링크 기사를 눌러보니 '우리 시대 독서가들'에  박명림 교수, 박종일 번역가와 함께 내 이름이 올라가는 가당치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얼떨결에 셀럽들 사이에 끼게 된 나는 약간 긴장된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순화동천으로 갔는데 사회를 맡은 출판평론가 김성신 선생과 김언호 대표, 김미옥 선생 등이 따뜻한 웃음으로 맞아 주셔서 다행이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많이 만났다. 부산 동명대 김동규 교수님이 송환영 부사장님과 함께 오셔서 처음으로 얼굴을 뵈었다. 지난번 북토크 때 인사 드렸던 소설가 조성기 선생도 반가워 인사를 드렸고 1년 간 몰타섬에서 지내다 얼마 전 귀국하신 황선도 박사님을 만나 악수를 나누었다. 물론 부인인 강순희 선생과 함께 오셨다. 연극배우이자 화가인 김자숙 선생이 아내를 보고 무척 반가워하셨다.


저녁 7시가 되자 김성신 선생이 무대 위로 올라가 "젊은 날 한길사의 책들 덕분에 무릎 꿇지 않고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라는 말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김성신 선생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제 출판종수로는 세계 7위로 올라서 스페인보다 책을 많이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양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질 아니던가. 동아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책을 만든 지 43년째인 김언호 대표는 1980년대  『해방전후사의 인식』  『우상과 이성』 등 우리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문제작들을 펴내며 우리 정신의 질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그는 인사말을 대신해 이번  『서재 탐험』과  『지혜의 숲으로』 등 4부작으로 북토크를 하게 된 데에는 김성신, 김미옥 같은 분들의 도움이 컸다며 그 노고에 고마움을 표했다. 김언호 대표는 1970년대 말 ' 행동'은 물론 '생각만 해도' 붙잡아 갈 정도로 엄혹한 시절에 굴하지 않고 그 상황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나아가 주장·주창을 하고 싶어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감방에 가는 게 무섭지 않았냐는 질문에 자신은 여태껏 누구에게 한 번도 얻어맞거나 고문을 당한 적이 없었고 감옥에서는 오히려 대우를 받고 살아 너무 좋았다고 대답해 좌중을 웃겼다.  

김언호 대표는 책이라는 건 그릇과 같아 뭔가를 담는 것이고 기본적으로 아름다워야 함을 강조했다. 그래서 편집자는 미술가여야 하고 자신이 사진을 찍는 것도 결국 책을 만들기 위한 행위라고 고백했다. 한길사에서 나온 책들은 모두 밀도가 높은 역작들인데 그런 밀도를 유지하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오자를 내지 않는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책을 만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오자가 나오기 마련인데 그걸 최소화하려는 마음이 단단한 책을 만든다는 것이다. 우문현답이 아닐 수 없었다. 김 대표는 시중에 '잘 다듬어지지 않는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게 안타깝다고도 했다. 한 번 말을 시키면 언제나 이야기에 이야기가 꼬리를 무는 청산유수여서 김성신 사회자가 준비한 질문보다 답이 앞서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는 김언호 대표가 신문사를 그만두고 출판사를 차리며 돈이 없어 쩔쩔맬 때 어머니가 30만 원을 주셨다는 대목이 찡했다고 속삭였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가장 인상적이 대목은 예전 신동아에서 권두 에세이로 썼던 '사람으로 살기 위해'라는 말이었다. 책을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이유 하나였다. 자신은 항상 책을 쓰는 사람이기보다는 책을 쓰게 하는 사람이었다고 하면서 들려준 이야기 중 재밌었던 건  『로마인 이야기』를 위해 시오노 나나미 여사를 만난 에피소드였다. 평소 '현장이 중요하다'라는 신조를 가지고 있는 김언호 대표는 아직 2권 정도밖에 나오지 않은 책을 한국에서 내기 위해 나나미 여사가 있는 로마로 향했다. 그리고 왜 이 책을 내려하느냐는 작가의 질문에 "나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로마인 이야기를 일게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고 허락을 받았다. 현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학생과 직장인들에게 도시와 시민정신 발현의 전형으로 로마 시대를 보여주고 싶어 한 김 대표의 진정성이 통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아니, 로마까지 갔으면 뭘 좀 사줘야 할 것 아니야? 밥도 내가 샀어."라고 익살을 떨어 또 한 번 모인 사람들을 웃게 했다.  


어떤 책을 낼 것인가, 나를 동의시킬 수 있는 책을 내라, 종이책으로 가르쳐야 한다, 작은 가방 들고 다니는 여자는 믿지 않는다, 책을 한 권씩 들고 다니자, 한 손엔 촛불을 한 손엔 책을, 같은 명언들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북토크는 뜨거웠고 예정된 시간 한 시간 반을 훌쩍 넘겨 두 시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방청석엔 김언호 대표나 김성신 선생 못지않게 대단한 분들이 많이 안아 있는 자리였다. 김성신 선생이 추천서를 써줘서 작년에 새내기 직장인이 되었다는 여성 출판인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책을 읽게 하느냐'는 것이었고 김언호 대표의 대답은 '아름다움'이라는 화두였다. 아름다운 책을 만들고 책을 읽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만든 책 중 실패작은 무엇이었느냐?'는 김미옥 선생의 질문에 그동안 만든 책 이야기가 다시 쏟아졌고 내셔널 지오그라피처럼 책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보자는 마음으로 파주 출판도시와 헤이리를 기획하게 된 이야기도 다시 되새기게 되었다. 한길사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바람에 인연이 되었다는 박명림 교수는 김언호 대표가 시대를 읽는 눈이 있음을 감탄하며 한길사의 책들은 기대의 부름에 응하는 것은 물로 개인의 인생을 위한 보편성까지 갖추었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조성기 선생은 "박명림 교수가 안경을 준비 못해 짧게 한다더니 그렇지 도 않았다."라고 투덜거려 사람들을 웃겼다. 조성기 선생의 유머 감각은 언제나 기대 이상이다. 민음사에서 주로 책을 냈던 조성기 선생이 한길사와 이어진 것도 페이스북에 진보적 성향과 유머가 어우러진 글을 올리는 걸 김언호 대표가 눈여겨봤기 때문이었다. 군인 출신이면서 한길사의 책을 정말 많이 가지고 있다는 독자(최명룡 선생인지 채병문 선생인지 잘 듣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와 번역가 박종인 선생의 말씀도 너무 좋았다. 모임이 끝나갈 때쯤 김성신 선생이 불러서 나도 무대에 나가 질문을 하고 소감을 말한 기회를 얻었다. 어쩌면 이 자리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바로 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나는 가볍고 쉬운 글을 주로 쓰는 사람이니까) 그래도 너무 기쁜 마음이었다. 나는 김언호 대표가 『서재탐험』에서 했던 '책을 읽는 정치세력의 정치와 책을 읽지 않는 정치세력의 정치는 다를 것이다'라는 대목을 인용하며 요즘 젊은 친구들이 책을 읽지 않음을 규탄했고 결국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은 김 대표가 앞서 얘기한 '아름다움의 추구'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는 자문자답을 하다가 내려왔다.


너무나 뜨거운 자리였고 김언호 대표는 점점 더 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김미옥 선생, 백은숙 한길사 편집주간과 다시 인사를 나누었고  정미경 기자와도 인사를 했다. 김동규 교수님과는 나중에 맥주 한 잔 꼭 하자는 약속을 했다. 김언호 대표는 길게 늘어선 팬들에 둘러싸여 싸인을 하고 계셔서 인사를 드릴 수가 없었다. '책을 만드는 것은 결국 독자와의 공동작업이라고 생각한다'는 김 대표의 말을 가슴에 되새기며 집으로 돌아가다가 동네 카페 빠뿅에 가서 위스키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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