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Jul 22. 2023

마술사 같았던 두 사람의 공연

국립극장 여우락 중 <백야(Polarnacht)> 후기

   

여우락은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라는 뜻을 담은 국립극장의 예술 축제로 총 12개의 공연이 진행된다. 어제는 그 축제의 마지막 장인 <백야(Polarnacht)> 무대였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대체 불가능한 전방위 아티스트’라는 평을 받고 있는 대금 연주자 이아람이 뭉쳤다.

리플렛 인터뷰에서 축제를 매우 좋아한다고 밝힌 이아람은 오랫동안 손열음과의 공연을 갈망했는데 막상 그 공연이 성사되어 같이 연습도 하고 밥도 먹고 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생각보다 더 존경스러운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자작곡과 클래식을 가리지 않고 대금으로 모든 곡을 멋지게 소화하는 이아람도 멋졌지만 피아노의 손열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최고였다.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터치부터 폭풍이 몰아치는 듯 화려한 건반 운용, 심지어 타악기처럼 피아노를 쓰는 모습엔 세계적 뮤지션으로서의 자신감과 노련함이 넘쳤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무대 위에 선 연주자들을 보면 무협지에 나오는 고수나 마술사를 직접 목격하는 기분이다. 그만큼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어지지 않고 신기하기만 한 사람들이다. 표가 일찍 동나는 바람에 아내는 최소된 티켓을 겨우 구했다고 한다. 덕분에 펜스에 가려진 3층 관람석이었지만 그래도 최고의 음악과 뮤지션이 주는 감동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아, 극장 가는 길에 여은영 작가님을 만났다. 이분은 정말 공연 열심히 보신다. 아마 여 작가님은 우리 부부한테 그런 생각을 하실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남들이 뭐라든 안 보는 것보다는 보는 게 낫다는 것이다.

아, 하나 더. 공연이 다 끝나고 연주자들이 앵콜에 응할 때 아내와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본 연주에서는 어림도 없지만 앵콜이나 커튼콜 때는 다들 사진을 찍는다. 특별한 금지 안내 멘트가 없을 때는 말이다. 그런데 무대가 모두 끝나고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어떤 머리가 크고 덩치도 큰 60대 초반 남자가 오더니 다짜고짜 아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렇게 동영상 찍으면 안 돼!”라고 소리를 지르고는 냅다 달아나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말도 안 되는 지적질을 반말로 한 것도 황당했지만 삿대질은 더 어이가 없는 행위였다. 아내는 얼른 저 사람을 쫓아가자고 했다. 더구나 그 사람은 의자에 등을 붙이지 않고 봐서 뒷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안내원에게 주의를 받기도 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얼른 뛰어가 셔틀버스 타는 줄에 섰다. 일찍 나가는 폼이 전철역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타러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창문을 통해서 보니 그 남자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아내는 통로로 올라가 그 남자 앞에 서서 말했다. “앵콜이나 커튼콜 때는 사진 찍어도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무례하게 얘기하시면 안 되죠.” 남자는 아내의 말을 못 들을 척하며 앞만 쳐다보고 아예 아무 반응을 안 했다. 나도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뒤에서 계속 관객들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냥 뒤쪽으로 와서 앉았다. 아내는 만약 자기가 덩치 큰 남성이었다면 저 남자가 그런 식으로 굴진 못했을 것이라며 더 억울해했다. 잘난 척이 몸에 밴 사람 같았다. 그래도 어떻게 삿대질을 하며 얘기를 하는 것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함께 공연을 본 류진아 선생이 올라오길래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마도 우리 얼굴이 많이 굳어 있어서 왜 그러나 했을 것이다. 좋았던 공연을 망치는 건 한순간이었다. 나이 들수록 다른 사람 대할 때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정적인 장면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