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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02. 2023

일의 본질을 시원하게 알려주는 책

최인아 대표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광고회사를 다니던 시절 남몰래 가끔 훔쳐보는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일기획 사보에 실리는 최인아 부사장의 광고 칼럼입니다. 항상 존댓말로 시작하는 그 칼럼은 한 번도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는 최인아 부사장의 목소리를 프리젠테이션 현장에서 직접 듣는 느낌이었죠. 워낙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기억하는 대목은 광고의 본질을 규정하는 질문과 답이었습니다. 광고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너무나 크고 막연해서 얼른 답을 내기 힘든데 최 부사장은 용케도 그걸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는 명쾌하게 정의해 주었거든요. 저는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건을 파는 일, 무언가를 널리 알리는 일, 기업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일이라는 단편적인 정의에 비해 브랜드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는 한 줄은 입체적이면서도 절묘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정말 그 분야에 오래 몸 담고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통찰이었죠.


많은 시간이 지나 최인아책방 운영자가 된 최인아 대표의 책이 나왔습니다. 듣기로는 오래전에 계약을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 상 집필이 미뤄지다가 2023년 4월에야 비로소 두 번째 책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물론 저는 나오자마자 그 책을 샀고 앉은자리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라는 다소 직설적인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그동안 최 대표가 일했던 광고계는 물론 직장을 다니거나 사업을 하면서 하게 되는 일 전체로 범위를 넓힌 고찰들이 들어 있더군요. 그래서 부제도 '최인아 대표가 축적한 일과 삶의 인사이트'입니다.


"호텔업은 장치산업"이라는 이건희 전 회장의 남다른 통찰을 소개한 것도 인상적이었고 남에게 주워들은 얘기들로 한 권의 책을 채우는 저자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얘기도 고개를 끄덕이게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꽂힌 대목은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하고 싶은 마음 못지않게 해야 하는 일, 하기로 되어 있는 일을 해내는 마음과 의지를 높이 친다'는 약속과 책임감에 대한 대목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축구나 야구처럼 팀스포츠를 하는 것이라는 당연한 통찰입니다. 생각해 보면 연극이나 영화를 볼 때면 저도 늘 느낍니다. '이렇게 엔딩 타이틀에 많은 사람들이 뜨는데, 이렇게 다들 하나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니 다른 사람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하게 되겠구나' 하고 말이죠.


책을 읽고 리뷰를 바로 써야 하는데 바빠서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욕실에서 세수를 하다가 이 책을 다시 들춰보고 짧게라도 글을 써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책꽂이에서 책을 찾아 펼치니 명함이 한 장 툭 떨어졌습니다. 그날 책을 서촌그책방에서 사서 밖으로 나와 아내와 커피를 마시며 읽고 있었는데 오래전 나우누리 광고동에서 '좀비'라는 닉네임을 쓰던 후배 조승현이 지나가다가 반갑게 아는 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작가가 된 저를 부러워했고 저는 기획회사의 대표이사가 된 그 친구를 부러워하다가 헤어졌는데 그때 받은 명함이 책 사이에 꽂혀 있었던 것입니다. 최인아 대표의 책과 명함 한 장은 순식간에 저를 서촌의 그 햇살 가득했던 거리로 데려가 주는 마법을 발휘했습니다.


좋은 책은 두 번째 읽을 때 더 좋습니다. 저는 오늘 이 책을 다시 들춰 제게 밑줄을 그어 놓은 부분들을 짚다가 자신이 하는 일의 본질을 '생각의 힘으로 크리에이티브한 해법을 찾아내는 일'이라 정의한 부분을 찾아내고는 다시 밑줄을 더 그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책은 한 번 보고 내다 파는 게 아니라 두고두고 곁에 두는 보물상자입니다. 열 때마다 새로운 은금보화를 꺼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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